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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時論] 올림픽과 거지신앙

[시론 時論] 올림픽과 거지신앙

 

유독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른바 ‘젓가락 점심’을 싸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똑똑하지만 가난한 아이들만 다닌다는 학교인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도시락을 제대로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의 경우도 그러했다. 혹 실습을 하는 날이면 그래도 빵과 우유가 간식으로 지급되어 허기를 면할 수 있었지만 학과 공부를 하는 날은 쫄쫄 굶다 보면 저녁에는 현기증이 나기도 했다. 도시락이 없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으나 일부 아이들은 젓가락을 들고 다른 학생들의 도시락을 한입씩 가로채 먹었다. 그 애들은 부끄러움도, 미안한 기색도 없었다. 온 교실의 도시락은 다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젓가락만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더 배불리 먹는 경우도 허다했다.

남의 것을 얻어먹는 것을 ‘동냥’이라고 한다. 어릴 적에 거지들은 각설이 타령이라도 해서 밥을 얻어먹는 것을 보았는데 젓가락 점심을 하는 아이들은 뭐 그리 기세 등등한지 ‘한입’을 제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싸움도 걸었으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도 어쩌다 도시락을 싸간 날, 자신의 것인 듯 나의 도시락에 손을 대는 친구에게 ‘먹으려면 말이나 하고 먹으라.’고 했다가 주먹질을 당하고 곧 반격을 하여 싸우기도 했다.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여 전인 지난 1월 17일, 갑자기 북한은 응원단 230여 명을 파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스하키를 단일팀으로 구성하자고 했다. 올 초까지 평창올림픽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던 북한은 올림픽이 열리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핵미사일을 쏘아 올리더니 태도가 급변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남한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정치적인 좋은 의미나 평화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태극기를 게양하지 못하고 한반도기를 걸며, 애국가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치 남의 잔치에 갑자기 들어와 ‘감 나와라 배 나와라’ 주인행세를 하는 듯 보여서 많은 국민들이 불쾌해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북한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교통비와 숙식비 등을 모두 남한이 부담하는 것에 대해 괘씸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북한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이 끄는 대로 끌려다는 남한 정부의 저자세였다. 많은 국민들과 해외동포들은 북한의 ‘심보’와 남한의 ‘저자세’에 대해 심히 불쾌하게 여겼다. 북한을 위해서 올림픽을 유치했느냐고 야유를 보내기도 하였다. 북한이 진정 평창올림픽에 참여하고 싶었으면 미리미리 절차를 밟고 지불할 것은 지불하며 준비를 했었어야 했고 남한은 주권국가로서 자기 체면을 차리고 처신했어야 했었다.

젖먹이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값을 지불하고 자기의 것으로 취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도를 행했거나 도움을 받은 것이다. 미국의 대학에서 학생을 교육하는데 드는 비용은 학교와 정부, 그리고 부모가 부담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우수한 학생은 학교가 파격적인 장학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가 돈이 많으면 아무리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라도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즉, 나의 자녀가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갔는데 장학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면 나는 아주 큰 부자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왠지 서운하다면 돈은 많을지 모르나 거지 근성을 가진 자이다.

교회에서도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다 보니 ‘행함과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나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한 혜택’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가급적 최소한만 하거나 교회를 옮겨가는 현상도 볼 수 있다. 그러니 믿음이 자라지 않고 늘 갓난아이의 신앙에 머물고 만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에 대한 지식만 함양하거나 교회에 다니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털어서 남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이른바 ‘동냥하려다가 추수(秋收) 못 보는’ 사람이 없도록 키우는 일이다. 체격이 커진 만큼 마음도 커져야 인물이 되는 법이다. 신앙생활은 인물 만드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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