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 목사의 청년을 품은 교회이야기] 드라마 같은 목회 현장
목회를 하다 보면 정말 드라마 같은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굳이 드라마를 따로 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교회를 약 3년간 잘 섬기신 A집사님 내외가 직장을 다른 주에 있는 회사로 옮기게 되어서 아쉽게도 이곳을 떠나셔야 했다. 모든 교인이 다 귀하지만, 평생 함께 동역하고 싶은 특별한 일꾼이 있게 마련이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일꾼들을 주로 다른 곳으로 보내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떠나신 A집사님 가정은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그런 가정이었다. 그렇게 다른 주에서 2년 남짓 유명한 미국의 모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셨고 기도 끝에 한국으로의 귀국을 결정하셨다. 미국 회사에 사직 통보를 하고 미국 생활을 정리해서 드디어 인천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향했는데…
이제부터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항에서 국토안보부 요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조사할 사항이 있다고 하면서 체포해 가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실제로 일어났다. 집사님이 하셨던 프로젝트 중에는 국가 안보와 연관된 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와 정부가 한편이 되어서 A집사님을 산업 스파이로 몰아붙였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이가 없다. 아무 증거도 없이 단지 심증만으로 사람을 연행해서 감옥에 가둘 수 있는 나라가 과연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이란 말인가!
A집사님은 그날부터 꼬박 한 달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고 그 이후에도 오랜 기간 가택연금에 전자발찌를 부착해야만 했다. 이미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집과 차를 처분했기 때문에 집사님은 정들었던 우리 교회에 도움을 청했고, 당시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 내외가 흔쾌히 본인의 집을 공개했다. 그렇게 두 가정은 6개월 동안 주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배우며 누리셨다. 가택연금 중에는 집안의 모든 인터넷 서비스도 없어야 하며 방문자도 스마트폰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는 까다로운 규정이 있었다. 그 후에 어느 안수 집사님 가정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셨는데 전에 사시던 집을 A집사님 내외가 마음껏 쓰실 수 있도록 기꺼이 배려해 주셨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통용하듯 자신의 집을 공개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빌려드리는 등 물심양면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섬겨 주신 모든 손길 위에 주님의 채우심이 늘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가택연금이 시작되고 첫 한 달은 교회 출석도 허락되지 않았다. 심방 예배를 드리러 찾아 가면 이 억울한 상황에 내 속이 다 뒤집힐 지경이었다. 신원의 기도를 드렸던 시편 기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거대한 회사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싸워서 과연 승산이 있을까? Trade Secret 케이스를 전문으로 다루는 대형 로펌에서 변호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은 어려운 싸움이라고 했다. 시편 35:1,26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함께 부끄러워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
마치 시편 기자라도 된 듯 거룩한 분노를 발하며 집사님을 선동했다. “집사님, 이놈의 회사 완전히 망하라고 저주 기도를 아주 쎄~게 하십시다!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갚아 주시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생사람 잡는 사악한 버릇을 이 기회에 완전히 고쳐 놔야 앞으로도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심방을 통해서 집사님과 대화를 나눌수록 그분 안에 충만한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집사님의 고난을 통해서 더욱 가까이 동행하시는 주님의 임재 때문에 오히려 내가 은혜와 도전을 받고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A집사님을 방문했던 다른 성도님들도 상황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린도후서 1:5-6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바울이 위로를 받는 것은 곧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을 비로소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민 생활이 아무리 외롭고 힘들다고 투덜거려도 A집사님의 고난 앞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고난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셔서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감사와 찬송으로 보내시는 집사님 내외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난의 기간 동안 집사님 가정은 믿음으로 더욱 하나가 되었다. 아니, 우리 교회 모두가 그 은혜를 누렸음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의 두 딸을 축복하셔서 첫째 딸은 예일 의대에서 적지 않은 장학금을 받으며(때마침 아버지의 수입이 전혀 없었다!) 입학하게 되었고 둘째 딸은 현재 코넬 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후 사역자로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신대원 진학을 준비 중에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검찰은 기소도 하지 못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비록 2년 가까운 시간을 빙햄톤에 발이 묶여 있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강제소환(?) 덕분에 A집사님 내외와 다시 한번 교회를 함께 섬기는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의 회사에서도 그동안 집사님이 오시길 기다렸고 현재 A집사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열심히 한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신다.
목회를 하다 보면 정말 드라마 같은 사연을 접하게 된다. 간혹 막장 드라마 같은 사연도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 인생의 드라마를 감독하고 연출하시는 하나님께서 부활의 승리, 해피엔딩을 기획하고 계신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