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호프 커뮤니티 난민 선교(5) 난민 목사님을 도우라는 부담감을 주신 하나님
대표: 김지선, 영어명 Lori Kim
지금은 미국 내에 많은 부탄 난민 교회의 목사님들께서 사례비를 조금이라도 받으며 목회를 하시지만, 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난민 목사님들께서 교회 밖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며 목회를 하였습니다.
제가 난민 사역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한 부탄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교인이 오십여 명 정도인데 모든 교인들이 새신자였고,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들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주일날 난민 교회를 방문하면 잔돈으로 인하여 무게가 많이 나가고 일 불짜리가 듬뿍 쌓인 헌금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교회에서 렌트비 등 기본적인 지출비도 감당하기 힘든데 목사님의 사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난민 목사님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시지만 그때는 더욱 어렵게 생활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목사님은 목회하시기 전까지 트럭 운전을 하시며 수입이 괜찮았는데 풀타임으로 목회를 하시기 위하여 직장을 관두신 후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닭공장에서 난민들이 매월 1,500불에서 2,000불정도 벌었는데 난민 목사님들도 그 정도 생활비만 있으면 풀타임 목회를 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목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제게 재정적인 애로사항을 나누셨습니다. 부수입으로 테네시에서 돼지를 잡아 그 고기를 난민가정들에게 팔아 몇백 불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렌트비를 내고 나면 가족을 부양하기엔 생활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난민캠프에 살던 부탄 사람들이 계속 미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을 전도하고 사역하는데 너무 바빠 파트타임 일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난민 목사님들의 사역은 목사로서 교회의 기본적인 사역 외에 주중에 새로 미국에 도착하는 난민들을 공항에서 픽업하는 일부터 교인들의 미국 생활 정착과정을 다 도와야 했습니다. 저도 난민가정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돕는 일이 끝도 없이 얼마나 많은 일인지 잘 알고 있는 터였습니다.
목사님과 대화중에 마음에 그 목사님을 도우라는 성령님의 강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비영리단체를 시작하기 전이라 저의 난민 사역에 재정 후원자가 한 명도 없었고, 저도 아무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사역에 필요한 돈을 생활비에서 썼기 때문에 경제적인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 목사님을 도울 형편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 너무 분명하여 목사님께 매달 생활비를 지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팔백 불 정도면 아파트 렌트비는 해결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남에게 후원금 요청을 잘 못하는 제가 한 번도 아니고 매달 팔백 불을 어떻게 모아서 도울지 조금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머릿속으론 아무 방법이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난민 교회에 밴들을 공급하여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아는 세 명의 자매님이 제 이야기를 듣고 목사님 후원을 위하여 매달 이십 불 혹은 삼십 불을 작정하였고 제가 출석하던 교회의 성도님들도 두 분 정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팔백 불을 채우기엔 너무나 멀었고 더 이상 말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후원금에 대하여 후원 편지를 쓰지 않았고,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에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난민 사역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수표를 보내주셨고 월말이 되자 모인 액수가 팔백 불이 되었습니다. 때에 맞추어 후원금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부탄 목사님께 돈을 전해드렸는데 너무 감사해하셨습니다. 이제 목사님의 매달 아파트 비용 책임이 제게 달렸다는 생각이 들어 목사님과 헤어지자마자 다음 달 돈을 염려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달은 어떻게 잘 해결되었는데 다음 달은 어떻게 하나 싶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한 달간 돈이 조금씩 들어오더니 월말이 되자 또 팔백 불이 다시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제 염려와는 상관없이 매달 팔백 불이 모자라지도 더 많지도 않게 채워져 그 목사님을 도와드릴 수 있었습니다. 일 년 후쯤엔 봉사자로 난민 사역에 참여한 집사님들께서 헌 물건을 모아 거라지 세일을 하여 그 후원금을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달엔 월말이 다 되었는데 돈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30일이 되자 한꺼번에 여러 군데서 후원금이 들어와 팔백 불이 채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돈이 남아 다음 달로 넘어간 적도 없고, 모자라 덜 드린 적도 없이 삼 년간 한 달도 빠지지 않고 목사님을 후원해드릴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공급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부탄 목사님을 도우라고 마음에 부담감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매달 팔백 불씩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부탄 목사님께서는 헌신적으로 풀타임 사역을 하셔서 삼 년 동안 교인수가 오십 명에서 삼백오십 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는 개척교회 때부터 교회 헌금의 10%를 부탄 선교에 쓰기로 작정하여 부탄에서 어렵게 사역하시는 목회자를 위하여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350명으로 성장하자 부탄 국경지역에서 가까운 인도에 부탄 목회자들의 훈련을 위하여 성경훈련학교와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부탄 목회자들이 그곳에 와서 두 달간 숙식을 하며 훈련을 받고 부탄으로 돌아갑니다. 시티호프는 그 목사님을 3년간 재정후원을 했고 그 이후 2년간은 그 고아원을 후원하였습니다.
그 부탄 목사님 교회는 작년에 교회건물을 구입하고 교회가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많은 부탄 난민 교회들에게 좋은 본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티호프의 지원을 항상 고맙게 여기고 지금은 시티호프가 클락스튼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부탄 교회들을 총동원하여 적극적으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클락스튼의 개척교회를 사용하셔서 부탄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계획을 미리 하시고 제게 그 부탄 난민 목사님을 돕도록 마음에 작은 부담감을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적게라도 쓰임을 받고, 그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을 정말 축복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