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스턴 신학칼럼-박성진 교수] 새해 벽두부터 원어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며
박성진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아시아부 학장/구약학 교수)
며칠 전에 페이스북에 한 분이 이사야 41장 10절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올렸다. 이 구절 후반부를 모든 영어성경에는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와 같이 미래 시제로 번역하고 있고, 한글 개정개역에서는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로 번역하여 시제보다는 화자의 의지가 반영된 표현(이를 구문론에서는 modality라 한다)을 사용하고 있다. 글쓴이의 주장은 이 본문의 히브리어 동사가 완료형(qatal형)이므로 과거 시제로 번역되어야 맞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I strengthened you and helped you; I uphe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와 같이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과거에 베풀어 주신 능력을 바탕으로 “나는 너와 함께 한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글쓴이는 기독교가 이 본문을 미래로 해석하면서 유대교가 과거로 해석한 것을 빼았았다고 주장하며 기독교가 본인들의 신학을 근거로 유대교가 해석한 방식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럼, 글쓴이가 주장한 바가 석의 적으로 타당성이 있는가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히브리 동사의 완료형이 보통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나 때로는 완료형이 미래 시제나 양태적(modality) 표현을 가리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기서 양태적 표현이란 시제와는 크게 관계없이 화자의 의지나 소망이 담긴 표현이다. 이사야서에는 이런 용법이 자주 등장한다. 예로, 이사야서 5장 13절에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모두 완료형이다. 여기서 ‘will’로 번역하면 미래 시제가 되고 ‘shall’로 번역하면 양태적 표현이 되는데, 둘 다 가능하다. 왜냐면 이사야서 5장 13절은 미래에 닥칠 심판을 예언하는 장면이자, 하나님의 굳건한 의지가 표현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를 수사적 완료(rhetorical perfect) 또는 예언적 완료(prophetic perfect)라고 부른다.
둘째, 그렇다면 이사야서 41장 10절의 완료형은 수사적 완료형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문맥을 살펴봐야 한다. 41장 13절을 보면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라는 표현으로 10절과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10절과 13절은 수미쌍관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10절과 13절을 하나의 문학구조적 단위로 보고 이 단위에 나오는 히브리어 동사를 살펴야 한다. 11절와 12절에 나오는 일곱 개의 히브리어 동사는 모두 미완료형으로 미래 시제나 양태적(modal) 표현을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본문은 예언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사야서 41장 10절의 완료형은 수사적 완료임이 분명하다.
셋째, 글쓴이는 유대인들은 이 본문을 과거로 해석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 먼저 유대인들이 가장 권위 있게 받아들이는 Jewish Publication Society의 번역에 의하면, 10절은 “I strengthen thee, yea, I help thee; Yea, I uphold thee with My victorious right hand”로, 11절은 “Behold, all they that were incensed against thee Shall be ashamed and confounded; They that strove with thee Shall be as nothing, and shall perish.”로 화자의 의지와 뜻이 반영된 양태적(modality) 표현으로 개정개역의 번역과 매우 흡사하다. 칠십인역(LXX)에는 이 헬라어 동사들이 부정과거형(aorist)로 나오는데, 미래적 부정과거형(Futuristic Aorist 또는 Proleptic Aorist) 용법으로 히브리어에서는 수사적 완료와 비슷한 의미의 범주를 보여준다.
넷째, 어떤 사람들은 히브리 동사에 시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모든 언어에서 동사는 시제만을 보여주지 않고 시제(Tense)-양태(Mood)-상(aspect)을 함께 보여준다. 이를 TMA 구조라 한다. 예를 들면, ‘그가 물에 빠졌다’와 ‘그가 익사했다”라는 두 문장을 본다면, 둘 다 과거 시제를 사용했지만 첫 번째 문장은 과거에 물에 빠진 상태를 표현할 뿐, 지금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를 주지 않지만 두 번째 문장은 과거에 물에 빠져 현재는 이미 죽은 상태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익사하다’란 동사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상(aspect)에 의해 결정된다. 히브리 동사형도 완료형이나 미완료형이냐에 따라 시제가 결정되지 않고 TMA와 주변 문학 구조를 함께 고려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다섯째, 그럼,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복잡한 내용을 다 이해해야만 구약 석의가 가능하단 말인가? 간단하게 대답하면 “그렇다.” 사실 영어의 동사는 더 복잡하다. 9개의 형태로 현재, 과거, 미래 시제에 완료형과 진행형(현재 완료, 현재 진행 등)을 표현하고 있고 많은 조동사를 통해 양태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히브리어 동사는 완료형(qatal), 미완료형(yiqtol), waw 연속형(weqatal & wayiqtol)의 네 가지 형태로 언어의 복잡함을 표현하기에 한 가지 형태가 다양한 TMA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잘 알면 구약 석의의 중요한 열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 이사야서 41장 10절 후반부가 미래 시제가 아닌 과거 시제라고 주장함을 통해 기독교가 본인들의 신학에 따라 유대인의 해석을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물론 초기 기독교가 유대교 신학 개념을 받아들여 기독화한 흔적을 신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로 들면, 선민사상인데, 유대인 정체성의 핵심인 선민사상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이 참감람나무고 진정한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기독화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선민사상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사야서 41장 10절에서는 시제가 바뀐다고 어떤 신학적 논쟁의 핵심이 바뀌는지는 의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석의에 대한 논의를 한 이유는 목회자들에게 바른 석의를 위한 원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본인이 재직하고 있는 신학교에서는 바른 석의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완료형은 과거 시제란 식으로 암기하는 정도의 원어 교육에서 본문의 문맥을 함께 고려하여 통합적인 결론에 이르는 석의 교육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함을 이번 페이스북의 글을 통해 다시금 절실하게 느낀다.
페이스북의 글쓴이는 이사야서 41장 10절의 본문 해석을 본인의 상상력과 결부시켜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라고 한다. 충실한 석의에 근거를 둔 상상력을 출판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상력은 본인의 일기에만 기록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