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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누군가는 가봐야 길이 나겠지요 (2)  

[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누군가는 가봐야 길이 나겠지요 (2)  

안지영 교수 – 나눔교회 담임 /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누군가는 가봐야 길이 나겠지요 (2) 

(지난 회에 이어) 

이런 내가 목사가 된다고 하니 많이들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요. 그 후배에게 목회로 들어서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다음 질문이 “어디에서 목회할 거냐?”였습니다. 나는 당연히 한국을 목회지로 여겼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지요. 그러자 후배는 이런 나의 계획에 대하여 극구 반대하면서 설득하더군요. “형님은 엽기적으로 목회할 게 뻔한데, 그러면 한국에서는 이단 시비가 날 게 뻔하다”라고요. 그러니 “미국에서 먼저 목회의 열매를 맺은 다음에 한국에 들어가라”고 조언하더군요. 그러면 쓸데없는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기존 시스템이나 형식이 생소하면 경계심이 먼저 드는 게 일반적인 형상이니까요. 그의 말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가 47세에 신학을 시작하고 49세에 목회하는 입장이기에, 나에게 주어질 목회 기회가 내 인생에 딱 한 번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왕에 목회에 들어섰으면, 할 수 있는 한 교회의 본질을 최대한 추구하는 방향으로 잡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면서도 그대로 그 제도 속으로 떠밀려 들어간다면 나 자신 스스로 모순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거니까요.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옳다고 여겼던 길을 걸어보고 나서 그다음을 생각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현재의 교회 시스템을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인 채 교회를 시작한다면 내가 목회에 들어선 목적이 퇴색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럴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가는 길을 그냥 따라가는 식으로 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배의 조언대로 나와 함께 개척을 원했던 형제들과 그 가족과 함께 달라스 지역에서 나눔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배의 말대로 나는 기존의 교회가 가는 길을 그냥 그대로 답습하는 목회가 아닌 길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는 가봐야 길이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바람에 함께 시작했던 형제자매들과 한동안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기존 교회의 분위기와 관습에 너무나 익숙했던 그들이 나의 목회 방향에 적응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초기에 함께 개척에 참여했던 가정 중 한 가정만 한국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가정은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반자로 함께 주님의 가족으로 지내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이제 목회 현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나온 나의 목회 현장 이야기를 그냥 추억 주머니 안에 꾸겨 넣는 대신에 나의 목회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나누며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서재 구석에 오랫동안 잊힌 채 있던 사진 앨범을 꺼내서 먼지를 털어내고 방문한 지인들과 나의 추억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 앨범에는 나의 인생이 담겨 있고, 그것을 나눌 때 나와 그들이 연결되어 더욱 가까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의 나눔이 다른 이들에게 격려가 되고, 가보지 않은 길도 갈 만하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그동안 함께 해왔던 교회 식구들과 함께 지난날을 추억하며 서로를 더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교회를 찾아온 새로운 식구들과 새로운 세대가 ‘나눔교회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만으로는 선뜻 글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서점이나 SNS와 온라인에 올라온 다양한 교회 이야기에 비하면 나의 것은 초라하게 보이더군요. 이러다가 괜히 출판사만 손해 보게 만드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더군요. 그러나 신학교에서 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의 반응이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만난 다양한 학위 과정에 있는 신학생들의 고민이 교회와 목회에 관한 이론을 배우지만 그 현장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한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 개혁에 관해 토론하고, 초대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교회를 꿈꾸지만, 현실 속에서 그런 교회와 목회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여러 방안을 적어도 시도하고 있는 목회자를 만난다는 게 목회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이유로 나의 목회와 교회에 관해 글을 써 볼 결심을 했는데,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내 앞에 있었습니다. 여기 달라스 주변의 한 조그만 교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너무 건방진 건 아닐까 하여 조심스러워지더군요. 잘못하면, 여전히 여러모로 부족한 우리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로 미화하는 쪽으로 빠질까 염려되었습니다. 많이 모자란 목회자인데도, 주변의 부추김에 그만 자신이 대단한 목사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하더군요. 나눔교회가 괜찮은 교회라는 소문에 한껏 기대하고 왔다가 그렇지 못한 현실에 실망했다는 말에 내 맘이 쪼그라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물론 기존 교회에 익숙했던 분들이 나눔교회에 와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염려 때문에 내가 배운 목회와 교회에 관해 나누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족해도 괜찮아. 뒤뚱거려도 괜찮아. 그저 시행착오라는 미로를 통과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배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라스 근처에 있는 한 작은 교회의 작은 목회자의 작은 손짓이 어디선가는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주는 유쾌한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배움을 나눠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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