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결혼식에 참석하시거든”
“결혼식에 참석하시거든”
제가 최근에 딸을 시집보내는 가운데 느낀 점 한 가지를 나눕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결혼하는 당사자이건 아니면 자녀를 결혼시키는 경우이건 상관없이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교회를 꾸미고 대예배당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성도님들 자녀들의 결혼식에 초대가 되어 참여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을 참여하면, 대부분 식사 뒤에 식후 행사를 하게 됩니다. 대충 몇 명이 나와서 편지를 읽고, Cake을 자르고, 그리고 나면 부케를 던지는 등 자기네들끼리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때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부모의 손님들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우리가 피해 주어야 아이들이 편하게 논다. 그들도 그걸 원한다’라는 이유에서 그랬던 것이고,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저도 그래야 하는 모양이다 싶어서 같이 자리를 뜨곤 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된 이유는, (지금 돌아서 생각해 보면) 제 생각에는, 당시 세상의 결혼식에는 아이들의 게임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좀 보기 민망한 부분이 있었던 시절이라 지레짐작하고 어른들이 자리를 일찍 뜨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번에 결혼식을 하면서 느낀 것은 자녀들이 본인들 결혼식에 부모님의 손님들이 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큰 것이 바로, 이분들이 자리를 일찍 뜬다는 이유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신랑 신부들에게는 결혼식도 중요하지만, 피로연도 중요한 행사입니다. 이번에 제 딸아이도 결혼예식을 하는 본당보다는 체육관을 꾸미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피로연에 와서 본인들 식사만 끝나면 일찍 자리를 뜨는 부모님 쪽의 손님들이 그들에게는 일종의 상처였던 것입니다.
‘이 분들은 내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야. 단지 엄마 아빠와의 친분 때문에 온 것이지..’ 하는 생각이 본인에게도 있고, 예식을 돕는 친구들에게도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오랫동안 전수되어 오면서 ‘내 결혼식을 축하하러 오는 것이 아닌 분들을 초대하고 싶지 않아’ 하는 생각이 결국 오늘날의 스몰 웨딩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분명 요즈음의 개인주의 성향과 함께 예쁜 결혼식을 추구하는 유행이 맞물렸겠습니다만.
이번에 결혼식을 하면서 체육관에 자리 배정을 하는데 ‘한어 회중의 손님들이 식사 후에 바로 자리를 뜨면 사진이 흉하게 나오니까 한어 회중 손님들은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로 배치해 달라’는 말을 듣고, 정말 그런가 했는데, 실제로 식사가 끝나고 그들의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자리가 빈 것을 보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결혼식에 초대받아서 가시거든, 피로연에서 일찍 자리를 뜨지 마시고 피로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기껏해야 20분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우리가 미리 자리를 뜨는 것을 원하지 않고, 반대로 끝까지 있어 줄 때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노력이 있어야 앞으로 그들의 행사에 배제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