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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C. S. 루이스 삶과 사상 산책 (3)

[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C. S. 루이스 삶과 사상 산책 (3)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C. S. 루이스 삶과 사상 산책 (3) 

군대 경험과 새 가족

C. S. 루이스는 많은 사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중에 루이스가 인문학자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커크패트릭 선생입니다. 커크패트릭은 루이스의 대학입시를 지도한 개인 교사였습니다. 그는 루이스를 철저하게 논리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스가 고전어를 익히고 유럽의 언어를 익히게 하였습니다. 반면에 커크패트릭 선생을 통해서 루이스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그가 죠오지 맥도날드(George MacDonald)의 저서들을 발견했습니다. 루이스가 커크패트릭 선생과 공부하는 동안 책 진열대에서 우연히 <판타스테스(Phantastes: A Faerie Romance)>란 책을 발견하고 무심코 그것을 가지고 와서 그날 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그의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책이 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몇 시간 후에 나는 아주 중대한 경계선을 건넜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이미 윌리암 모리스(William Morris)나 러스킨(Russkin)같은 19세기 작가들의 로맨틱한 상상력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판타스테스>에서 ‘새로운 양질’(new quality)인 ‘영적 신비감(Numinous)’으로 한층 풍성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판타스티스>에 널리 배어있는 것은 그가 후에 ‘성결함’이라고 인정한 “밝은 그늘(Bright shadow)”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상상력을 바꾸어 주었고, 그는 상상력에 세례를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책은 루이스의 생애와 작품에 가장 중심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 선생의 도움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년 정도 대학생활을 즐기던 그는 1차 대전에 프랑스지역 전투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는 전쟁경험이 그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참호 속에서 살아남은 대다수 군인처럼 루이스도 전쟁경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1939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난 전쟁 때의 기억들이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나 괴롭히곤 했다”라고 썼습니다.  

전쟁경험이 C. S. 루이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군 복무로 그 후 30년 동안이나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루이스는 훈련소에서 만난 동기 패디 무어(Paddy Moor)와의 특별한 사연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은 전쟁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상대의 부모님을 돌보자는 언약을 했습니다. 

패디 무어는 전투에서 전사했고 루이스는 패디 무어와 맺은 언약을 굳게 지켰습니다. 1917년 6월 루이스는 아이리쉬 출신의 군대 동기 패디 무어(Paddy Moore)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후 루이스는 자주 패디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패디 무어와 C. S. 루이스는 두 사람 중에 누가 전사하건 살아남은 자가 유가족을 돌보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패디 무어는 1928년 3월 24일 전사했습니다. 전사한 패디 무어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어머니 재니 무어(Janie Moore)와 패디의 여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의 거처할 집을 마련해 주었고 그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루이스는 재니 무어(Janie Moor) 여사를 양어머니로 삼고 평생 돌보았습니다. 

혹자는 루이스가 한때 그녀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갖기도 하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쩌면 (회심하기 전에) 루이스가 그녀와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단순한 추측에 불과합니다. 사실 C. S 루이스와 재니 무어 부인의 정확하고 구체적인 관계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렀고 그녀가 죽기까지 그녀를 한결같이 보살폈습니다. 

루이스는 최선을 다해 무어 부인을 돌보았지만 무어 부인은 루이스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고, 성품이 까다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어 부인은 루이스가 같이 살기에는 쉽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요구사항이 많았으며 남을 지배하려고 하였고, 막무가내식이었습니다.  

그녀는 교육도 별로 받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크리스천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루이스가 크리스천 되는 것에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루이스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자기는 소외되었다고 느끼고 신앙생활을 거부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무어 부인은 루이스의 신앙생활을 반대하고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좋은 점도 있었던 같습니다. 그녀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여인이었습니다. 나아가 무어 부인은 인심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 집은 친구들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어 부인의 이런 따뜻한 성품이 루이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루이스는 아버지와 관계가 어려운 상황에 무어 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정서적 안정을 얻게 되었고, 그녀와 함께 살면서 루이스는 소외와 고독에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무어 부인과의 친숙한 관계를 통해 루이스는 밝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루이스와 아버지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옥스대학 재학 중에 제1차 세계대전에 중위로 참전했던 루이스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엉덩이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을 거쳐 후방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때 루이스는 맘이 불안했고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병원 면회를 와 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버지는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 부상과 외로운 병원 생활은 루이스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선 아버지와 관계에 치명적 단절이 왔고 무어 부인과 관계는 발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던 불신앙의 길을 확실하게 갔습니다. 루이스의 불신 생활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아버지께 불효함으로 회개가 필요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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