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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에로스를 필로와 아가페로 익히는 부부  

[목회단상 牧會斷想] 에로스를 필로와 아가페로 익히는 부부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에로스를 필로와 아가페로 익히는 부부 

두 손 꼭 잡고 걷는 커플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킨다. 사막을 걷는 것처럼 목마르게 사는 세상에 샘물 솟는 오아시스 같은 그림을 보는 듯하여. 이들은 행복을 누리며,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편 꿈을 품고, 창의력을 발휘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어 가치 있는 존재가 될 거야. 젊은이들은 가정 꾸릴 욕구를 접고, 이혼율은 높아지고, 출생률이 낮아지는 메마른 오아시스만 있는 사막 같은 세상이지만.   

연애할 때 둘의 손을 주머니에 함께 넣고 만지작 거리며 다녔는데….. 목회의 순간들이 스물 거리며 되살아 난다. 남들에게는 잘하는데 가족들에게는 별로라는 비난 듣기 일쑤고,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 “사랑하라 용서하라” 설교할 때 입술이 뒤틀리는 듯 힘겨웠다. 이때 이중성격이라는 경멸의 레이저를 쏘던 날카로운 눈총에 풀 죽은 나는 부부갈등의 다양한 소설들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부부는 본래 그런 것”이라며.  그리고 “저게 목사야?”라는 험한 욕설들이 튀어나오는 목회자 세미나의 뒷 담화를 떠 올리며 평안을 찾는데 내 안의 어린 왕자가 질문을 한다.   

오아시스 같은 가정에 왜 샘이 마르는 줄 알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사랑하기로 서약하고 결혼 한 부부가 왜? 서로 신뢰를 거두고, 눈을 맞추지 못하다 갈등하고 다투며 외롭게 사는 줄 알아? 결혼하는 숫자의 절반이 이혼하는 이유가 무아라고 생각해?  “농부는 밭을 갈며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조금씩 캐낸다”라고 생택쥐페리는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의 비밀은커녕 가정에서 상처를 주고받는 이유를 생각 한번 해 보지 않고 이 나이 먹도록 살았단 말이야?   

남녀는 서로 다른 호르몬 탓으로 육체와 성격과 사고방식이 너무도 다르지. 하지만 신비라고 말할지 진리라고 말할지 모르겠는데, 이 다름이 끄는 힘에 서로가 끌려 사랑하고 종족을 번식하는 것 아니야?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비밀이 없어진 부부는 싫증을 느끼고,  다름에서 온 매력은 둔갑하여 서로를 이간을 시키곤 하지. 결국 둘은 의를 위해 서로를 바로 잡으려 치열한 싸움을 하며 괴로워하는 것 아니야? 이기심은 내면 깊숙이 숨기고…. 이 속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정신 건강이 쇠약해지고, 상상력과 창의력에서 오는 신선한 생각과 꿈도 사라져 버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길 에너지까지 사그라들게 되는 것 아니야? 그리고 사랑에서 얻는 행복을 잃어버린 억울함에 서러워하고.  

가족은 애로스 사랑의 끌림으로 인해 형성된 공동체야. 그러나 가정을 이룬 후에는 필로로 아가페의 사랑으로 성숙시켜야 하는 것 아니야? 농부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주며 가꾸어 열매를 맺듯. 네 안에 계시는 주님과 소통하면서. 이것이 되는 부부는 사막을 걷는 듯한 고통 속에서 듣고 이해하고 설득하며 정직하게 감정과 생각과 진리를 나누며 사막에 샘물 솟는 오아시스가 되는 것인데. 그래서 생택쥐페리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리고 연애할 때 두 손을 꼭 잡고 하던 걷기를 길들이는 일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야. 때로는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는 듯, 놀이 인지 애무인지를 하다 함께 손 잡고 뛰고 걷기를 하고 또 하며 하며 에로스가 필로로 아가페로 잘 익는 사랑이 되는 것이야. 그래서 소꿉놀이에 길들여진 친구들이 세월이 지나도 만나면 동심으로 자연스레 돌아가 순수하고 친밀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지. 

이 진리를 모르던 난 자존심을 꺾고 아내와 “사랑한다” 말하려 망설이고 재고 또 망설이다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용기 내어 사랑을 표현하지만 눈 흘김의 레이저 공격을 받고 외로운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코끼리를 삼킨 뱀의 그림을 보고 모자라 부르고, 모자 속에 있는 코끼리 그림을 보고는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돈이 되는 수학과 과학과 영어 공부를 하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본래 답답하게 사는 것이 부부라 여기고 살았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귀전에서 맴돈다. “3분의 1이 애인을 가지고 산다”는. 애로스가 필로로 아가페로 성숙하지 못하고 에로스 사랑만이 행복이라 착각하는 세상인가 보다. 손을 꼭 잡고 걷고 놀이하며 내 안에 사는 어린 왕자와 함께하는 정직한 대화로 오아시스가 있어 아름다운 사막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른들은 놀자판, 어린이들은 에너지 드링크를 먹으며 치열한 공부 경쟁을 하고, 핸드폰에 의존하고 살아가는 기형적인 시대에 “내 안에 계시는 주님과 소통하는 일과, 연애할 때 꼭 잡고 걷던 아름다운 모습을 길들이는 일”이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이야기하는 듯한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가정의 달에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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