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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27) 감사를 위해 작심삼일을 견뎌라 

[무화과나무 아래서](27)  감사를 위해 작심삼일을 견뎌라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감사를 위해 작심삼일을 견뎌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각자 결심을 할 것이다. 그중 우리는 감사하기를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잘 감사하기 위해서는 작심삼일을 잘 견뎌야 한다. 

감사가 원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찌나 우리 인간의 의지력이 부실하던지, 인생이 바뀌어도 삼일을 못 간다. 출애굽기 1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생활을 청산시켜준 여호와를 찬양하지만, 먹을 물이 없다고 3일 만에 원망했다. 그리고 이들의 원망은 사안마다 수시로 등장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라고 말할 정도였겠는가! 감사가 안 나오고 원망이 나온다면, 다시 결단하라. 비록 3일 만에 불평과 원망이 나오려 하더라도, 작심삼일을 생각하면서 계속 결단하라. 그리고 정말 감사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감사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하라.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다. 감사가 무엇인지 안다면 감사하라. 

우선 현재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 멀리 떨어진 곳이 더 풍요롭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기회는 항상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 있다. 때로는 감사의 조건들이 나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굳건하게 지고 가라. 나만이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고 남과 비교하며 슬퍼하지 마라. 끝까지 지고 가는 당신의 십자가가 당신의 기쁨이 될 것이다. 

한 연예인이 대학생을 위한 강연에서 큰 도전을 준 적이 있다. 딸과 함께한 지리산 등반에서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버리고 싶었지만, 끝까지 메고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간신히 오른 정상에서 배낭을 열어 보니 먹을 것이 가득했단다. 무겁다고 버리고 갔다면 정상에서 굶었을 텐데, 끝까지 메고 갔기 때문에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강연 말미에서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짐이 없는 사람은 없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렇다. 누구나 짐을 지고 이 땅을 살아간다. 그러니 나의 짐이 더 무겁고 당신의 짐은 가볍다고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 각자의 분량에 따라서 지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었을 때, 연예인의 배낭에서 먹을 것이 나왔던 것처럼, 당신을 돕는 것이 나올 것이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물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란다. 이들에게 무거운 돌덩이는 그들을 살리는 안전장치다. 그렇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나만의 십자가도 나를 살리고 구원하는 안전장치다. 절대로 버리지 마라. 주님이 나에게 주신 나만의 십자가는 죽음을 이긴 영광의 면류관이다. 

그리고 부정적 시각을 잘 다루어라. 뭐든지 삐딱하면 좋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대화할 때 매우 빠르게 말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평균 1분당 150~20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하지만, 나 자신과 속으로 대화할 때는 1분당 1,30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10배 정도 빠르게 많이 말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셀프 톡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대화할 때 어떤 대화를 많이 할까? 이것에 대해서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나 자신과 이야기할 때 긍정적인 말 보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나는 안 될 거야’ 

‘나는 잘 못해’ 

‘내가 그렇지 뭐’ 같이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연구가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하는 경우는 정말 많다. 

부정적인 대화의 최고봉은 기드온이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를 때 기드온이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 가관이다. 사사기 6장 12절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르지만, 기드온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우리집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가장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라고 말한다. ‘엄청 겸손하네’라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만, 기드온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하며 표징을 구한 것을 보면 겸손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약한 자라고 믿고 살았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시각차이다. 

만군의 주를 만군의 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사를 용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표징을 찾으니, 왜 기드온이 축복의 땅인 가나안에 살면서도,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숨어서 추수하는 자가 되었는지 알만하다. 기드온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했으면, 작은 자와 약한 자가 자신의 정체성이 되었겠는가! 

그런데 기드온에게서 느껴지는 측은함이 사실은 오늘 나에게서 느껴지는 아픔이 아닌가. 고난이라는 어려움, 낙심이라는 장애물에 익숙해지다 보니, 자신감은 사라지고, 무기력한 마음만 남았다. 그러니 무심결에라도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누구보다도 존귀하게 여기는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극악한 범죄자들의 사형틀 위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가 나를 위해 죽었다. 낙심으로 죽고 싶고 절망으로 망가진 나를 위해서 그가 죽었다. 나는 그의 죽음과 바꾼 존재다. 세상의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채찍을 맞고 나를 위해서 죽었다면, 감사할 만한 일 아닌가! 

어두운 밤이 없다면, 별빛은 빛나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밤의 별빛이 우리에게 감동과 이야기를 만들어주듯이 고난 중의 감사가 우리의 가치를 기억하게 한다. 만약 고난 중에 부정적인 자신을 만나고 있다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기억하라. 

기쁜 일이 있을 때만,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것이 온전한 감사다. 그때 ‘진짜’ 감사가 우리에게 축복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진짜 감사를 맞이하는 2023년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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