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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 목사의 하.나.우 이야기 (23)] 하나님의 연장: Sermon (1) and Storm (설교와 고난)

[박인화 목사의 하.나.우 이야기 (23)]  하나님의 연장: Sermon (1) and Storm (설교와 고난)

박인화 목사 – 뉴송교회(미주)

하나님의 연장: Sermon (1) and Storm (설교와 고난)

뉴송 교회를 섬길 때 온라인(online)을 통한 주중 몇 번의 새벽 경건회 인도를 평신도들이 감당하도록 했다. 경건회 길이는 10여 분에 불과했지만, 경건회를 인도한 성도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사회적인 직업이나 활동과 관계없이 “설교를 준비하고 전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라며 “매 주일 설교하는 목사님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는 가를 실감하게 됐다”는 대답이었다. 마치 처녀 때는 자신만 생각하다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으면 “친정어머니가 이렇게 힘들게 나를 낳고 키우셨음을 발견했다”는 자매와 비슷하다. 말씀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설교가 쉬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끊임없이 씨름했던 질문 중 하나는 “과연 설교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라는 것이었다. 은퇴를 몇 달 앞두고 “설교 준비란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합니다. 지난 35년 설교를 위해 뼈를 깎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깎을 뼈가 없어서 은퇴합니다”라고 했을 정도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준비한 설교의 반응에 대해 “은혜가 되지 않았다.” “설교의 깊이가 없다.” “지난 주일의 설교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는 하늘이 주저앉는다. “설교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설교는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대통령 앞에서 설교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세계 정상과 각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대하는 대통령은 과연 어떤 설교에 영향과 변화를 받을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연로한 나단 선자자는 예루살렘 왕궁의 다윗 왕에게 설교해야 했다. 더구나 다윗 왕이 은밀히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해야 하는 설교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부담되었을까 이해가 간다. 나단은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한 다윗 왕에게 양을 비유로 조심스럽게 설교했을 것이다.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삼하 12:2-4). 

이전에 목자였던 다윗 왕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았다는 대목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 12:5).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설교를 듣고 스스로가 마땅히 죽을 자임을 발견했다. 설교의 결과 다윗은 자신의 죄를 겸손히 인정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사무엘하 12:13a). 

나단 선지자는 왕 앞에서의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얼마나 비명을 지르며 뼈를 깎았을까? 

“과연 설교가 왕의 마음을 바꿀까?” 

“왕이 돌이킬까?” 

“만에 하나 불편한 반응을 보인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성경의 절과 절 사이에 소개되지 않았을 뿐, 설교자 나단의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설교자)를 통해 다윗을 깨우치셨고 돌아오게 하셨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연장이다! 

설교자는 설교에도 자신이 없지만, 설교자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강단에 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며 돌아오게 하신다. 요나 선지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스라엘을 어렵게 하는 니느웨를 향한 설교는 죽기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었지만, 요나는 니느웨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결정한다. 결국, 큰 물고기에 의해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니느웨 사람을 직면하게 된다. 요나는 마지 못한 설교, 억지 설교, 한 사람도 은혜받지 못할 것이라는 소극적 기대감을 가지고 설교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요나의 설교에 의해 니느웨 십이만여 명(욘 4:11b)이 변화를 받은 사실은 놀랍다. 

설교란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을 동반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강단에 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 다윗과 같고 니느웨와 같은 민족을 돌아오게 하신다. 매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절기 설교는 쉬운 것 같은데 쉽지 않다. 12월의 성탄절 설교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더 많은 뼈를 깎는 대가를 지불하며 말씀을 준비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전하는 놀라운 특권을 받은 사람이다. 연말과 새해를 준비하며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하자. 

 1. 하나님은 부족한 설교자를 연장으로 사용하신다. 

 2. 설교는 뼈를 깎는 고통을 지불하지만, 사람을 변화시킨다. 

 3. 설교의 목적은 세상의 소망,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 이번 sermon에 이어 다음에 계속 storm 제목으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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