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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오스카 와일드의 “지옥의 단편”

[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오스카 와일드의 “지옥의 단편”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오스카 와일드의 “지옥의 단편”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알콜 중독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많이 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질문합니다. “내가 당신을 어디서 본 일이 없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아, 있었지요. 나는 본래 절름발이였는데 당신이 고쳐주셔서 제가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절름발이였을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얻어먹으며 살았는데, 다리가 온전해지고 나니 얻어먹을 수도 없고, 할 일도 없어요. 또 누가 나를 환영하지도 않고요. 생활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맘이 상해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이렇게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거리를 헤매는 창녀인데 본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니 내가 너를 용서하고 구원했는데 아직도 창녀로 사느냐?”고 꾸중하듯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대답하는 말이 “물론이지요. 제가 당신으로부터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딸이 되고 감사해서 창녀 생활을 청산했었지요. 그런데 일하기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할 줄 아는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고, 믿어 주는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 외로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다시 옛날 직업으로 돌아와서 삽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이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네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기가 막히셨습니다.

또 한 곳에 가다가 예수님이 만난 사람은 아주 혈기 많고 주먹질만 하는 조폭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가만히 보니 아는 얼굴이었습니다. 옛날에 본 사람이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하다가 폭력을 쓰게 되었나?” “예수님, 죄송하지만 저는 원래 시각장애자였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저의 눈을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눈감았을 때는 몰랐는데 눈 뜨고 보니까 아니꼬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모순되고 부조리하고 부정부패 사치와 타락, 여기에 울분이 터져서 주먹을 쓰다 보니 이렇게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상은 ‘행복한 왕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지옥의 단편이라는 작품의 줄거리입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나름대로 신앙적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을 묵상하며 쓴 작품입니다. 이 지옥의 단편은 오스카 와일드 특유의 기지와 유머가 담긴 작품입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당시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모순과 타락을 조롱하며 풍자하는 묵직한 교훈이 담긴 작품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문학계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극작가요, 시인이요, 소설가요 동화작가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생전에 이미 인정을 받고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생애 마지막을 감옥에서 보내게 한 그의 윤리적 탈선과 기행이 아니었다면 그는 훨씬 더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야말로 두루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교육도 잘 받았고 재능도 뛰어났고 가문도 좋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와일드 경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안과와 외과의사이며, 고고학과 민속에 관한 책을 쓸 만큼 아일랜드 민족학 학자였습니다. 또한, 윌리엄 와일드 경은 박애주의자로, 트리니티 칼리지 뒤에 있는, 링컨 플레이스 내, 도시 빈민을 위한 무료 진료소 운영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그녀는 당시 성공한 작가였고 의식 있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9살 때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후 오스카 와일드는 포르타 왕립학교에 1864년에서 1871년까지 재학하였으며, 포르타 왕립학교를 졸업한 후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 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후 1874년부터 1878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그의 대학 시절은 문학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학창시절에 다른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고전학에서는 발군의 성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882년에 미국으로 강연여행을 떠나 희곡을 씁니다. 관심을 받아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작품이 뉴욕에서 상연되기도 했었으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몇 가지 소설이나 시를 쓰고 또는 비극도 썼으나 별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와일드는 극작을 통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작가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다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늦게 시작하였지만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세운 것은 소설입니다. 그래서 그를 소설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가 쓴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입니다만 그는 단편들로 큰 주목을 받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 등 많은 단편 소설을 남겼습니다. 그는 단편을 통해서 당시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 ‘지옥의 단편’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라고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은혜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사는 모순을 지적합니다. 받은 은혜에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모순이요 허구입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은혜를 망각하고 그 은혜를 부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인정하고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누립니다. 반면에 은혜를 누리면서도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지옥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과 천국의 진입로라면 불평은 불행의 입구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여 큰 주목과 관심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감사를 고백하는 삶입니다. 개인의 삶에서 내면화되어 감사로 표현되지 않는 은혜와 기적은 자신을 해하는 무서운 칼날이 됩니다.

받은 은혜에 합당한 반응이 감사입니다. 받은 축복과 은혜에 바른 반응은 감사입니다. 감사의 최고봉은 누리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은혜와 축복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최상의 감사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웅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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