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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김용익 “꽃신”

[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김용익 “꽃신”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기독교 문학 산책 김용익 “꽃신”

상도는 부산의 한 시장에서 낯설지 않은 노인을 만납니다. 그 노인이 자신이 살던 동네 꽃신 집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저절로 걸음이 멈춰집니다. 자연스럽게 상도의 머릿속에 해묵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상도가 옛날에 살았던 고향과 꽃신 집 그리고 그 집과 얽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상도는 푸줏간 집 아들 즉 백정의 아들이었는데 옆집에 사는 꽃신 집 딸을 흠모했습니다. 꽃신 집 딸과는 학교를 같이 다니고, 간간이 같이 놀기도 했지만 늘 쉽게 범접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흠모하였고, 마음 속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상도의 마음을 아는지 상도 아버지도 꽃 신집 딸이 고기를 사러 오면 반가이 맞아 주고,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주었습니다.

상도와 상도네는 여러 가지로 꽃신 집을 부러워했습니다. 신분도, 손님이 많고 부자인 것도 부러웠습니다. 당시 꽃신을 파는 집은 부자이기도 했지만, 신분상으로도 고기를 파는 천민 백정인 상도네 와는 전혀 다른 신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도 옆집의 꽃신 집 주인은 상도네 와는 상종을 하지 않을 만큼 도도했습니다.

이런 형편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상도는 꽃신 집 딸을 향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도는 꽃신 집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청혼을 합니다. 꽃신 집 주인은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꽃신 집의 답변은 이 지방에서 제일 이름난 꽃신 집 딸인데 지체가 낮은 백정의 며느리로 시집을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냉정하게 거절당하는 과정에서 상도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지만, 꽃신 집 딸을 향한 연모의 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상이 바뀌어 꽃신 집의 가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고무신이 등장하면서 실용적인 고무신에 꽃신이 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꽃신은 팔리지 않고 꽃신 집의 손님들이 끊어져 꽃신 집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옛날에 꽃신 집이 성업일 때에는 손님이 끊일 사이가 없었고 지역 유지로 살았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꽃신 집은 경영이 어렵습니다. 이제 꽃신 집의 경제는 점점 더 비참해져만 갔습니다.

마침내 꽃신 집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짚단을 사지 못해서 몇 해째 지붕의 이엉을 갈지 못했습니다. 딸을 학교를 보내지 못하고 남의 집 부엌아이(식모)로 보내고 딸이 잘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좋아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푸줏간에 와서 쇠가죽을 외상으로 구매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졌는데도 백정 아들에게 딸을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고기를 파는 푸줏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특히 6‧25 전쟁 통에 고기를 많이 팔아서 큰 부자가 됩니다.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두 집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이 돼버렸습니다. 꽃신 집은 먹을 것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푸줏간 집은 남부럽지 않은 부자 집안이 됩니다. 시대가 바뀐 것입니다.

그래도 꽃신장이의 도도함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꺾이지 않는 자존심과 변화를 거부하는 무지함이 더 어렵게 한 것입니다. 꽃신장이는 고무신 백 켤레를 줘도 꽃신 한 켤레와 바꾸지 않겠다고 합니다. 꽃신값을 절대로 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팔리지 않는 꽃신을 계속 만듭니다.

견딜 수 없는 가난 때문에 꽃신 집 주인이 꽃신을 장터에 갖고 나와서 팝니다. 그러나 대놓고 팔지 못합니다. 신문지에 꽃신 두 켤레를 싸가지고 나와서 팝니다. 자존심 때문에 고무신처럼, 고무신값에 꽃신을 함부로 팔 수는 없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겨우 나와서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추위와 공복을 견디지 못해 장터로 나오면서도 끝까지 두 켤레 신발을 가지고 나와 꽃신을 팔고 들어갑니다.

그 후 상도는 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부산 어느 시장에서 눈을 맞으며 꽃신을 파는 꽃신장이의 아내를 발견합니다. 상도는 이미 부산에서 큰돈을 벌었지만, 여전히 꽃신장이 딸에 대한 실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상도가 꽃신을 사서 아주머니 따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꽃신 집 딸은 지난여름 한국동란의 전쟁 중 폭격을 맞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꽃신장이도 그 딸도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만 뒤의 일이었습니다.

꽃신 집에 대한 애증이 있는 상도는 큰돈을 주고 그 신발을 모두 사주었습니다. 신발값보다 훨씬 더 많은 큰돈을 주고 꽃신을 산 것입니다. 그 큰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그 부인은 “이 돈으로 그 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입니다. 꽃신을 신은 상도의 꿈속의 신부는 그렇게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이제 그는 꽃신 집 딸을 만나보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상도는 우산을 펴서 그녀를 받쳐 주면서 따라갑니다. 오직 그 부인이 꽃신으로 망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걸어갑니다.

김용익의 “꽃신”은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꽃신 집 주인의 비극을 고발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꽃신 집 주인 꼴이 됩니다. 아울러 상도를 통해서 시대와 상황이 변해도 과거 상처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는 군상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도 아름답게 지켜지는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꽃신’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삶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작가 김용익은 통영공립보통학교, 중앙중학을 거쳐 동경의 아오야마학원 영문과를 졸업했던 신지식인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 통역관과 대학 강사로 일하다 1948년 영문학 창작에 뜻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와 플로리다대학, 켄터키대학, 아이오아대학교 대학원 소설창작부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강의하였습니다.

1956년 미국의 문예지 ‘하퍼스 바자’에 ‘꽃신(the wedding Shoes)’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고 지금은 다른 영어이름 “the Shoes from Yang San Valley”로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아마존에 김용익의 영어 소설 행복의 계절(The Happy Days)과 꽃신(The Shoes from Yang San Valley) 두 권을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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