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성경의 정경화 스케치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성경의 정경화 스케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에 대한 신뢰감이 매우 두터웠기 때문에 추가적인 성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을 직접 목도(目睹)하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신자들도 많았고, 적어도 그 목격자들의 생생한 보고와 증언을 들으면서 성도들이 그 증거를 믿고 따라서 살았으므로 주님과 주님의 사역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교회를 인도했을 때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가 강했기 때문에 신약의 정경의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은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문서화 작업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AD 1세기가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가 교회에 권위 있는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외경(外經)과 위경(僞經), 이단들의 책, 그리고 저자를 알 수 없는 책들이 무질서하게 유통되었습니다.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으려는 거짓 경전들의 출현은 교회에게 신약 성경의 정경화 작업의 필요를 촉구합니다. 이 와중에 ‘교회의 모든 문서를 불사르라’는 로마의 박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칙령은 정경화 작업을 재촉했습니다.
정경 구분의 필요성이 2세기에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지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정경이 완성된 것은 4세기 말엽이었습니다. 4세기 초엽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로 공인되면서 교회가 안정되고 교세가 성장하면서 경전 확정 작업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유세비우스, 키릴루스, 아타나시우스, 히에로니무스 등의 저명한 교부들이 주목할 만한 활약을 하였습니다.
정경화 작업은 구약이 더 어려웠습니다. 신약은 기준이 명확했습니다. 반면 구약은 의견 차이가 컸습니다. 아타나시우스 이후 신약 성경 27권은 서방교회 안에서 거의 확정되어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별 이의 없이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의 경우 유대교의 견해에 기울어 39권만 인정할 것을 주장한 사람은 불가타 성경의 번역자 히에로니무스와 아타나시우스 등이었습니다. 반면 어거스틴 등은 소위 ‘외경’으로 구분한 문헌들의 경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419년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재추인하여 서방교회 안에서 주장을 관철시켰습니다. 동방교회는 692년의 퀴니섹스트 공의회에서 신약에 관해 서방교회와 의견을 통일하고, 구약에 관한 주목할 만한 의견 접근을 보아서 정경화가 완성됩니다.
정경 확립의 중요성을 깨달은 동서 교회는 AD 363년 라오디게아 종교 회의, AD 393년 히포 종교 회의 등 주요한 종교 회의를 거쳐 마침내 AD 397년에 어거스틴의 주도 하에 열린 제3차 카르타고 교회 회의에서 정경에 대한 최초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규정된 사항 가운데 하나는 교회 내에서는 오로지 정경으로 인정된 책만 읽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결정된 정경 목록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의 목록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바울의 서신이라는 이유로 인정되었습니다. 이후 열린 히포 교회 회의(419년)는 제3차 카르타고 교회 회의의 목록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신약의 정경화는 다소 시간과 과정을 거쳤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신약의 정경화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적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영적 권위였습니다. 이는 구약의 선지서들이 인정받은 방법으로써, 기록된 말씀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내적인 증거가 있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사도성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권위는 예수님에 의해 공인된 권위이므로 이 기준은 정경화 작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셋째는, 문서의 영성이었습니다. ‘문서의 내용의 주제나 그 주제의 영적인 특징이 성경으로서 합당한가?’였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거짓 문서들은 제거되었습니다.
넷째는, 보편성이었습니다. ‘교회가 전반적으로 그 문서를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섯째는, 영감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 기록된 문서라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여섯째는, 전통성이었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그리스도 중심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밝히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 신약의 정경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많은 문서들 가운데 어떤 것은 정경으로 채택되고, 어떤 것은 채택되지 않았을까요? 어째서 어떤 문서들은 마침내 완전히 신약 성서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 책이 교회의 공중 예배에서 읽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9명가량의 기자들이 반세기에 걸쳐서 기록한 것입니다. 내용별로는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예언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기자의 편지가 수신자인 교회나 개인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이 초대교회에서 회람 문서로 유통되었습니다. 후에 그 사본들이 집성되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였습니다.
신약 정경 27권의 목록은 동방의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에 의해 처음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AD 367년에 자기 교구(敎區)의 여러 교회에 부활절 서신을 보내면서 오늘의 신약 성경 27권과 동일한 목록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신약 목록 27권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정경으로 확립되는 과정에서도 성령께서 적극 간섭하셨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역사의 검증을 통해서 완성된 성경이 66권은 성령의 조명(Illumination)하심을 통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 성경은 각자의 삶에서 경험적 역사로 검증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