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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
쉼표에 머물러야 할 때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쉼표에 머물러야 할 때</span>

심연희 사모(RTP 지구촌 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미주)

쉼표에 머물러야 할 때

COVID-19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격변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의 일상이 멈췄다.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달라지고 있고, 경제활동의 종류와 양상이 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돈을 번다는 사람과 돈을 잃는다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불가능해졌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은 물론이고 집 밖에서 몰려 노는 아이들의 고함소리, 웃음소리도 그쳤다. 하다못해 아프신 부모님을 방문하는 일도 금지되었다. 노환으로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으로 가신다는 집사님의 전화가 마지막이 되었다. 목회자로서 심방도 심지어는 장례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교회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도, 나가서 전도도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사람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삶의 모습들이 다 멈추어 섰다. 그리고 언제 이 사태가 종식될지는 기약이 없다.

모든 것에 쉼표가 붙여졌을 때 우리는 갑작스러운 ‘정지’의 순간 앞에 선다. 여태껏 해오던 일들도, 숨 가쁘게 달려가던 삶도 멈추어 섰을 때 당혹감과 혼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알코올 중독이 몇십 년째 계속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그 빈 잔에 대체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지로부터 시작된 황당함이 조금씩 수그러들면서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쉼표라는 삶의 여백에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Doing이 멈추었을 때 남는 것은 Being이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 자신이다. 어느 순간 닥쳐온 정지의 순간에 홀로 덜렁 남겨진 자신을 마주하기를 거부했던 한 내담자가 떠오른다. 온 가족이 자살이나 살해로 죽음을 맞았던 가정에서 자라 혼자 남겨졌다. 희망을 걸었던 남편과의 관계는 외도와 이혼으로 끝이 났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죽도록 일했다. 하지만 장성한 아이들이 자신의 품을 떠나면서 덜 바빠지기 시작한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지 못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 못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뭘 새롭게 시도하기에 어정쩡한 50대 후반의 나이에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모든 것이 멈추어 선 지점에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약과 술을 함께 삼켰다. 병원에서 퇴원해 상담소로 온 그녀는 마치 머리도 가슴도 텅 빈 사람처럼 어떤 질문에도 ‘잘 모르겠어요’만 반복했다. 딸도, 엄마도, 직장인도 아닌 자기 자신 그 자체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놓아버렸던 순간에도 자신을 놓지 않으신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삶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갔다. 분주함을 핑계로 한편에 안 보이게 치워 두었던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멈춤은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지만, 그 안에서 진짜를 찾도록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남아있는 진짜 내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마주하게 한다. 가만히 있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나 자신을 보게 된다.

Doing이 아닌 Being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럽다. 내가 대체 뭐 하고 살았나 싶다. 그런데 숨 가쁜 달리기가 멈춘 잠잠한 중에 의외의 목소리를 듣는다.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셨다고 말씀하신다(렘 1:5). 주님이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는 잔잔한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한다. 주님 안에서 Being만으로 충분함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그다음이 보인다. 교회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되기 시작했을 때 그 존재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직시하게 된다. 어딘가 도달하려는 달리기를 멈췄을 때, 빛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의미는 더 강해진다. 뭔가를 해내는 것보다 존재 자체가, 살아감 자체가 훨씬 중요함을 깨닫는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면 그다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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