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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
위기의 가정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위기의 가정</span>

심연희 사모(RTP 지구촌 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미주)

위기의 가정

요즘처럼 집에 콕 갇혀있어야 하는 때에는 우리와 연결된 많은 것들이 단절된다. 교회, 직장, 학교를 포함한 일상의 공간들과 단절되었다. 한없이 길어서 고슴도치의 형상이 된 아들의 머리나, 아들 머리 자라듯이 계속 늘어가는 옆구리살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사이버 공간들은 편하긴 하지만 사람 간의 친밀감의 욕구들을 다 채워주지 못한다. 윗도리는 셔츠 입고, 아랫도리는 잠옷 입고 참석하는 회의는 반만 진지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떨고 밥 먹고 차 마시던 공간도 여유도 사라졌다. 집에 머무르라는 명령이 슬슬 풀려가고 있지만 역시 아직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고,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뭔가 찝찝하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아주 가깝게 남겨진 유일한 존재가 가족이다. 쳐다보고 만지고 부대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관계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각자의 집에 갇힌 생활이 시작되면서 다시 한번 떠오른 이슈는 가정폭력이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어떻게 이 풍요의 나라에서 아이들이 밥을 못 먹을 수 있냐고 질문하겠지만, 하루 종일 나가서 일해야 겨우 먹고살고, 그나마 이 경제적 재난에서 한 달이라도 수입이 끊기면 당장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것이 미국 서민들의 삶이다. 현실을 피하기 위해 마약이나 술에 취해 있는 부모에게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그저 웅웅대는 소음이다. 곤란에 처한 건 아이들뿐이 아니다.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지 않으면 폭력에서 쉴 틈을 찾지 못하는 배우자들도 늘었다.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의 비율이 늘어간다는 뉴스도 이 비상시국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동안 다른 일들로 가려지고 넘어갔던 위기가 가정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위태한 현대의 가정은 코로나라는 역대급 허리케인에 요동치는 거센 풍랑을 만났다.

이런 불안한 때에 남겨진 것이 서로밖에 없는데도 왜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짐이 될까? 가정이 피난처가 돼야 할 이 시점에 어쩌다 전쟁터로 돌변했을까? 어쩌면 다른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던 우리의 영적 전쟁이 이제 한 곳으로 집약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군데로 흩어져 있던 우리의 문제가 모두 가정 안으로 끌려들어 왔기 때문일 런지도 모른다. J.D. Greear 목사님은 세상에 새롭게 만들어진 부부의 문제라는 것은 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저 원래 결점투성이인 사람들의 문제가 결혼과 가정 안에서 그 민낯을 드러내는 것뿐이다.

폭력이 있는 가정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가정이 문제를 안고 있다. 예수님이 대신 돌아가실 만큼 심각한 죄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라서다.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이 상황에 직장을 잃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곧 애가 울든 생극성을 부리든 밥만 먹고 일한다고 문 닫고 들어가는 남편의 뒤통수가 꼴도 보기 싫고 얄미워 죽겠단다. 전에는 늦게 들어와서 서로 얼굴 보고 밥 먹을 일이 드물었는데 삼시 세끼를 마주 보다 보니 복스럽게 밥 먹는다고 반했던 아내의 먹성이 이제는 게걸스러워 보인다. 에너지가 넘쳐 주체가 안 되는 건강한 아이들은 축복이지만,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씨름 끝이면 새끼를 죽이는 짐승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돌아와 꼼짝없이 붙어있는 대학생 자녀들은 밥해주는 부모가 고맙지만 새삼스러운 잔소리가 힘들고, 부모는 두세 시까지 안 자고 전화하고 게임하는 덩치 산만한 애들을 그만 내다버리고 싶다. 갇혀 있어 늘어가는 무기력감과 짜증이 이제 고스란히 만만한 가족에게로 향한다. 가족은 쉼을 제공하는 피난처지만, 화나면 두들기는 샌드백이다. 가정은 축복이지만 재난이다.

이 가정의 달에, 가족만 가까이 남겨진 이 폭풍의 시대에, 러셀 무어는 말한다. 폭풍 속의 가정을 살리는 길은 가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뿐이라고.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첫 번째 제도이자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마지막 때의 모형이다. 가정은 중요하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엄중한 책임이다. 그러나 가정은 최우선이 아니다. 가정 상담자로서는 하고 싶지 않은 선언이다. 하지만 가정을 최고의 우선순위에 둘 때 우리는 가족을 잘 사랑하고 섬기는 능력을 잃는다. 내 능력과 자만과 이기심을 만족시켜야 하는 도구가 된다. 배우자가 나를 만족시켜야 하고, 자식들이 내 위신을 세워야 한다. 가정이 이 재난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야 하는 메시아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으로 채울 수 있는 그 공간에 가정을 두기 시작하면 가족 모두에게 재앙이 시작된다. 말도 안 되게 무거운 짐을 가족 모두가 짊어져야 한다. 팀 켈러는 말한다. 결혼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보여주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 가정이 존재하는 주된 이유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을 위해서다. 우리의 깨어진 모습을 서로에게 고백하고 계속 용서하는 연습의 장이다. 진짜 천국은 아직 아니지만 용서와 섬김으로 천국을 살짝 맛보게 해주는 주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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