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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상처받은 치유자로의 부르심

[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br></br> 상처받은 치유자로의 부르심

 

헨리 나우웬이라는 분이 사용해서 유명해진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상처를 받을 때, 그 상처 때문에 인격이 망가지고 삐뚤어져 결국 인생이 낭비되는 수도 있지만, 상처가 그의 내면에서 잘 승화될 때 우리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다른 사람을 안아주고 치유하라는 치유자로 부름을 받았고, 그것이 우리에게 고난이 허락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은 스스로가 경험해 보기 전에는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암에 걸려 본 사람만이 암 판정을 받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를 알기 때문에 쉽사리 ‘믿음으로 이겨내라.’라는 식의 얘기는 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잃은 어떤 자매님이 슬픔을 견디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교회 식구들이 와서 위로한다면서 ‘천국에 갔으니, 천국에서 볼 수 있으니 괜찮잖아…’ 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저희 교회 나눔터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마음이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어떤 사람이 무명으로 저를 비방하는 것은 하루 이틀 된 얘기는 아니지만, 수난절이 시작되면서 특별히 목요일, 금요일은 그 마음의 상처는 극에 달했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내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에서 억울하고 수치스러움이라는 감정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싶었고, 누군가 무고한 사람에게 그런 일을 지우는 것이야 말로 정말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우리 회중 가운데 억울하고 수치스러움을 겪는 분들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분들에게 교회를 떠나지 말고 잘 견디어 내라고 얘기했지만, 그 역시도 내가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했던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억울함을 심어준 적이 없었는가 싶었습니다. 왜 없었겠습니까? 저 역시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고통을 심어주었을 거라고 느껴지면서 회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억울함과 수치를 심어주지 않으려면, 설교 때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세 가지를 기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하고, 알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자꾸 캐물으니 없는 얘기가 만들어 지곤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소문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문만큼 왜곡되기 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문을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사람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게 되고 그렇게 소문이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드렸던 수난절 예배가 은혜로웠다고 많은 분들이 얘기하셨는데, 사실은 그 예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특별히 십자가로 나아갔던 그 일을 통해서 많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성도님들의 아픔을 좀 더 이해하는 목사가 되라고, 좀 더 섬세하게 남을 배려하는 목사가 되라고, 특히 상처받은 치유자의 역할을 좀 더 잘 하라고 주님이 주신 시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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