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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도 중요한가요? (1)

[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도 중요한가요? (1)

안지영 목사 (나눔교회 은퇴목사/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도 중요한가요? (1)

내가 처음 교회를 나갔을 때, 나는 죄인인 줄 모른 채 나갔습니다. 그냥 호기심 때문에 찾아간 거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배운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만약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습과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 교육을 받을 때도 이 내용이 가장 핵심이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나중에 죽고서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결판이 난다는 거지요. 그래서 전도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제대로 내 안에 자리 잡지 못하는 거였습니다. 어떤 때는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그게 흔들려서 불안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확신을 가지려고 정말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잡힐 듯 잡히지 않더군요. 영적 체험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그런 곳을 찾아다니고 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천국행 보장을 받는 길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복음서를 묵상하면서 내가 그동안 배웠던 천국과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 나온 ‘하나님 나라’를 마태복음에서는 ‘천국/하늘나라’로 표기하고 있더군요.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에 입각해서 ‘하나님 나라’를 ‘천국’ 혹은 ‘하늘나라’로 표현했다는 거지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그대로 발음하는 것을 불경하다고 여겼답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그분의 크심을 표현할 수 있는 대체어로 ‘하늘’을 선택해서 사용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들렸나 봅니다. 천국을 부패한 이 세상과 대조되는 거룩한 장소로 여겼던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죽으면 가는 장소가 천국이라고 여기거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을 데리고 가실 장소가 천국이라고 믿게 된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천국에 대한 개념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궁극적 목적이 죽으면 천국에 가는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 세상은 더럽고 부패한 곳이어서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 땅에 별 큰 기대를 가지지 말고, 선한 일 열심히 하고 나중에 죽은 후에 그 은덕에 천국에서 상급을 받으면 되는 걸 구원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천국에 상급을 쌓는 차원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세상 삶을 초연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복을 매우 열망하고 있다는 게 모순인 것 같습니다.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건강, 좋은 배우자를 찾기 위해 온 열정을 쏟는 것과 죽은 후의 천국 삶은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성취만 하면 모든 게 하나님의 복으로 여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거지요. 땅의 것을 경멸하면서도 땅의 것을 얻어내기 위해 불의를 마다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의로운 길을 외면하는 선택을 서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에서 떼 돈을 버는, 소위 대박을 찾아 다니는 것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를 “부동산 투기”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투기를 통해 몇 배, 수십 배의 수익을 얻게 된 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문제들을 거의 외면하거나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길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죽어서 천국 가는 게 목적이라면, 부패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라고 강조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왜 이런 요구를 하고 있는 걸까요?

바울이 그렇게 요구한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 기도에 나타나는 천국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는 천국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 이 땅을 떠나 하늘에 있는 천국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데,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천국이 이 땅에 나타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 사는 삶이 천국 삶이 되기를 기도하라는 거지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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