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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유정신

[사설] 자유정신

 

자유정신은 침례 교인들이 선조들로부터 받은 위대한 유산인 동시에 이 시대를 사는 침례 교인들은 이 정신을 그들의 후대에 손상되지 않은 모습으로 전달해야 할 역사적 소명이 있다.

침례 교인들은 그 대상이 국가이건 로마 가톨릭이건 자기들의 신앙을 속박하고 영혼이 속박당하는 것을 죽음보다도 더 싫어했다. 많은 침례교 역사가와 교리학자들은 침례교가 지니고 있는 유산 가운데 가장 특징적 유산을 종교적 자유라고 했다. 그들은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있어서 성서의 권위 외에는 개인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규제하거나 침해하는 것에 대하여 언제나 반대해 왔다. 그들에게 교단은 있으되 교조(敎祖)는 없으며 단체는 있으되 특정한 신학이나 신조를 갖지 않은 것은 신앙원리나 정신이 이들의 신앙적 특색인 자유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정신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성경에서 하나의 교리적인 일관성을 추구하는 신조를 채택하여 교인들의 신앙을 통제하는 것 대신에 신자의 체험적이고 실천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도록 한 것이다. 침례 교인들이 가졌던 대표적인 자유정신 중에는 성경 해석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있다.

첫째는 침례 교인들이 가졌던 자유정신 중에 성경해석의 자유가 있다. 침례교가 추구하는 신학적 특징을 보다 세밀하게 말한다면 ‘다양성’에 있다. 침례교회 안에는 다양한 신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 역사는 주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로 구분되는 신학의 범주에 속해왔다. 하지만 수정된 칼빈주의, 수정된 알미니안주의가 기독교 내에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침례교회에 소속된 신학자와 목회자 가운데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주의를 따르는 이들도 있으며, 수정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그리고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혼합한 신학을 추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교회의 신학적 특징은 어느 특정한 신학사상을 따르지 않고 있다. 침례 교인들은 신학의 유일한 권위는 성경이고 그 성경해석의 자유를 신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다고 믿어 왔고 지금도 미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성경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신학의 다양성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침례교회가 신학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주의 신학이 침례교회 신학에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알미니안주의가 옳다고 말하는 등 침례교회 내에서 극단적인 논쟁을 벌이는 일도 발생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특정 인물의 신학사상을 따르지 않고, 성경해석의 자유를 보장하는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침례교회 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선조들이 피 흘려 지켜온 이 자유정신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이 중앙집권적인 정치 형태의 힘을 사용하는 일이나 획일화된 생각을 주장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에 대해 침례교 정신을 가진 대중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침례 교인들이 중요하게 간직하고 지켜냈던 자유 중에 양심의 자유가 있다. 하버드대학교 초대 총장인 헨리 둔스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법이 유아세례에 대한 그 어떤 비평도 금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반대하고 성인 신자의 침례만이 성경에 합당한 의식이라고 믿고 자기 막내딸의 유아세례를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유아세례에 대하여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았다. 당시에 천주교나 다른 신교에서까지도 이것을 이단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둔스터에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하나는 공식적으로 그의 견해를 철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총장직에서 사임하는 것이었다. 둔스터는 그의 신앙 양심에 따라 두 번에 걸쳐 사표를 냈고, 두 번째가 받아들여져서 총장직을 떠나게 되었다. 이처럼 침례교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물려준 유산은 성서적 신앙과 동시에 그들의 양심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성서를 이해하는 인간의 자유에 기초하고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침례교는 자유를 허용하고 인정하는 다양성(Diversity)속에서 오히려 복음적 신앙의 통일성(Unity)을 지녀왔다. 이 다양성 속의 통일성은 침례교신앙의 자유정신이 낳은 생명력이요 활력소이다. 침례 교인들에게 있어서 성서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최종적 중재자는 성서학자나 목사나 저술가나 총회의 결의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의 양심이 지시하는 바를 결단하는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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