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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C. S. 루이스의 생애 산책(15)

[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C. S. 루이스의 생애 산책(15)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C. S. 루이스 삶과 사상 산책 (15) 

루이스의 아내 죠이 데이비드 맨(2)

영국 작가에게 미국 여류시인이 편지를 보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루이스의 형 워런 루이스는 자신의 일기에 “동생이 매력적인 미국 여성으로부터 매혹적인 편지를 받았다.”라고 썼다. C. S. 루이스가 이 편지를 받고 매력을 느꼈고, 동생의 부탁으로 답장을 보냈던 워런 루이스도 좋아했다.

둘의 펜팔은 이년 반 동안 지적이고 영적인 사연을 주고받았고, 두 사람에게 엄청난 격려가 되었다.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은 자신의 가정문제와 건강문제를 숨김없이 의논했고, 인문학적 소양과 신앙으로 준비된 루이스는 진솔한 답장을 보냈다. 둘은 맘이 열렸고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점점 자랐다.

죠이는 1940년대에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특히 두 아들을 키우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무리해서 글을 쓰는 생활로 그는 신경 피로증에 걸렸다. 남편 빌 그례샴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들락날락했고 자주 집을 비웠다. 아주 짧은 기간에만 남편 역할을 했다.

이 기간에 죠이는 소설 <우는 만(Weeping Bay)>을 포함해서 몇 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이 화제가 되었다. 뉴욕포스트(New York Post) 기자가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썼는데 죠이를 ‘소녀 공산주의자’로 묘사하는 바람에 죠이는 마음고생을 했고, 이어서 십계명 해설서 집필을 시작하면서 죠이는 심한 황달을 앓게 되었다. 의사는 죠이에게 집과 일을 떠난 절대 휴식을 명령했다.

이런 죠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촌 언니 리네 피어스의 편지가 왔다. 두 아이의 엄마인 리네는 심한 알콜 중독자인 남편으로부터 탈출하기를 원했다. 돈도 없이 이혼하려는 리네와 두 아이를 죠이가 데려왔다. 죠이 집에 같이 살게 된 리네가 죠이를 도와 살림을 맡았다. 덕분에 죠이는 쉴 수가 있게 되었다.

죠이는 부모의 도움으로 1950년에 영국을 방문했다. 죠이는 런던에서 방을 구해 휴식하며 <산 위에 연기: 십계명 해설집/Smoke on the Mountain: An Interpretation of the Ten Commandments>을 마무리했다. 1951년 1월에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죠이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루이스 형제들 특히, C. S. 루이스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죠이 남편은 죠이의 사촌 리네와 사랑에 빠졌다는 편지를 보냈다. 죠이가 오면 불편할 수 있다는 사연이었다. 회복을 위한 죠이의 노력에도 남편은 죠이가 집을 비워 가정이 깨졌다고 소송을 했다. 죠이는 충격을 받고 루이스 초청을 받아 1951년 12월 말에 두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런던에 자리를 잡고 거의 2년을 보내는 동안 죠이는 생활비 충당을 위해 타이핑도 하고, 글도 썼다. 남편의 자녀 양육비 지원은 거의 도움이 안 되었고 루이스 도움으로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C. S. 루이스와 죠이의 관계는 우정을 넘어 사랑으로 발전했다.

죠이는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죠이와 C. S. 루이스는 거의 매일 만나 사랑을 확인했다. 죠이와 두 아들 그리고 루이스는 연휴를 함께 보냈다. 루이스 주변 사람에게 둘의 결혼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때 죠이의 비자 갱신이 거절되었다. 영국 정부는 그녀의 공산주의 행적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는 서둘러 법적 결혼을 추진해 1956년 4월 23일에 둘은 법적 부부가 되었고 죠이는 영국 체류가 가능했다.

루이스는 죠이와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옷퍼드 주교도는 죠이의 이혼 경력을 문제 삼아 주례를 거부했다. 두 사람은 각자 집에서 생활하였는데 죠이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갔는데 암 환자로 판명되었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진 상태였다. 의사는 루이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죠이의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C. S. 루이스는 피터 바이드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바이드는 젊은 성공회 목사로 신유 은사가 있었고 루이스와 친했다. 바이드 목사는 루이스의 부탁대로 죠이에게 기름을 바르고 치유 기도를 하기 위해 병원으로 왔다. 루이스는 죽어가는 죠이가 결혼식을 몹시 원한다는 것을 알리고 병상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다. 바이드 목사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병상 결혼식을 집례했는데, 증인은 워런 루이스와 병원에서 일하는 수녀 두 사람이었다.

의사는 죠이가 얼마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결혼식 후 죠이의 건강은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그래서 루이스 부부는 아일랜드와 웨일스, 그리고 그리스 여행을 했다. 이 여행들은 죠이와 루이스 두 사람에게 굉장한 추억이 되었다. 59세의 루이스는 청춘이 즐기는 가장 행복한 여행을 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였다. 죠이의 암이 재발한 뒤 급속도로 악화되어 죠이는 영면에 들어갔다.

루이스와 죠이는 약 10년간 같이 했다. 1950년 1월에 죠이가 루이스에게 편지를 보냈고 1960년 봄에 죠이의 암이 재발하였고 7월에 죠이가 죽어 장례식이 열렸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세월은 10년도 안 되지만 두 사람은 각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루이스는 죠이의 인생을 완성해 주었고 죠이도 루이스의 인생 완성에 한몫을 감당했다.

죠이가 루이스에게 받은 도움은 루이스의 책을 통해 신앙을 굳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루이스의 편지를 통해 영적 성장을 했고, 작가의 역량을 향상케 했다. 아울러 죠이는 루이스의 도움으로 인생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에 죠이에게 루이스가 받은 도움도 어마어마했다. 힘들게 늙어 가던 노총각 루이스에게 죠이와 두 아들이 가족으로 합류한 것은 큰 축복이었다.

루이스에게 죠이가 얼마나 중요할까? 많은 작품에 죠이가 녹아 있다. 루이스 스스로 자신의 최고 저서라고 말하는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Till We have Faces>를 죠이에게 바쳤다. 죠이의 일대기를 쓴 라일 돌셋(Lyle W. Dorsett) 박사는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에 Joy에 이중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헤아려본 슬픔/ A Grief Observed>은 죠이와 더불어 경험한 아픔을 근간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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