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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그동안 잘 견뎠다 (2)

[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그동안 잘 견뎠다 (2)

안지영 목사 (나눔교회 은퇴목사/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그동안 잘 견뎠다 (2)

(지난 회에 이어)

나는 한국 사람으로는 파푸아뉴기니에 파송 받은 첫 번째 성경번역 선교사였습니다. 당시에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이 있었고요. 그런데 후에 선교지로 간 나의 성경번역 프로젝트가 그분보다 더 빠르게 진행이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내 속에 이런 욕심이 생겼지요. “이런 속도면, 내가 한국 선교사로서 다른 나라 성경번역을 완성한 첫 번째 선교사가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내 뒤로 여러 한국 선교사가 파푸아뉴기니로 왔는데, 이들에게 내가 가진 경험과 정보를 알려주기가 싫더군요. 나를 앞질러 가는 게 싫었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성경번역선교 역사에 첫 번째 선교사로서 이름을 새길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았지요. 이런 속사정을 가진 내가 한국 선교사들과 함께 모여서 사역 이야기를 하며 기도할 때면 내 속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동료 선교사들의 사역이 잘 진행된다는 소식에 겉으로는 기뻐하지만 속은 불편했지요. 반대로 사역이 어렵다는 말에 겉으로는 염려해 주는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흐뭇해하는 이중성 때문에 주님께 참 부끄러웠습니다. 선교사로 나갈 때 많은 사람이 나를 두고 본국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많은데도 그걸 다 포기하고 열악한 지역으로 간다고 말해 줄 때 그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다 버렸다고 여겼던 게 큰 착각이었지요. 나는 버린 게 없었습니다.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욕심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나마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주님 앞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라도 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다른 언어로 번역한 선교사가 성경을 한국 선교사로서는 첫 번째로 봉헌했고, 나는 두 번째가 되었지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사람들은 누가 첫째냐 둘째냐는 그리 관심이 없더군요. 성경번역이 부족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에 감격할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선교사의 개인적인 욕망과 교단이나 교파의 욕망이 하나님의 선교를 교회나 교파의 선교, 선교사 개인의 선교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목회 현장에서도 그와 같은 고질병이 존재하고 있더군요. 하나님의 목회를 목사의 개인 목회 사역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목사의 교회로 전락시켜 버린 얘기를 직간접으로 듣게 되더군요. 그런데 나 자신도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네요. 선교지에서는 겨우 버텼는데, 그나마 극복했다고 나름 대견스럽게 생각했는데, 목회 현장에서도 비슷한 유혹에 다시 바둥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이 나의 주된 관심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주일 예배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신경이 쓰였지요. 주보를 받으면 지난 주일 헌금이 얼마였는지에 눈길이 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네요. 달라스 지역에 어느 교회가 분쟁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느 교회로 그 교인들이 이동한다는 소문에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한심하다는 자책을 하기도 했지요. 남의 불행이 나에게 행운이 되기를 바라는 이기심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걸 넘어선다는 게 정말 쉽지 않더군요. 개척해서 지금까지 재정적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주일 사역을 마무리하고 귀가하는 길에 ‘이러다가 망하는 건 아닐까’라며 혼자 중얼거리기를 참 많이도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응집력을 갖기 위해서는 교회 건물이 필요하다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충고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건물이 있으면 그 건물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건물 구매를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재정 압박 때문에 건강한 목회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미국인 교회의 건물을 빌려 사용하고 있기에 교회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체 건물이 없기에 자연히 예배 시간이 오후 시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요소였던 것 같더군요. 또한 어떤 이들은 나중에 건축헌금에 대한 부담이 생길까 봐 자체 건물 없는 교회를 회피한다는 얘기도 돌아다니더라고요. 그래도 무리한 건물 구매를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시대의 흐름이 이렇다면, 당연히 우리 교회를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게 뻔한데도, 주일에 새로운 방문자를 기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네요.

모든 세대가 함께 드리는 통합 예배는 아직도 일반 교인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예배 방식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예배 중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아이들의 울음소리, 웃음소리 등이 예배 집중에 방해 거리가 됩니다. 그러니 일반 교회에서 이런 소음 없는 예배에 익숙한 이들이 우리 교회 예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요. 청소년부도 대예배에 모두 참석합니다. 그 말은 그들만의 예배가 따로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러니 청소년부 예배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나눔교회의 통합예배가 너무 낯설기만 할 겁니다. 내가 이런 예배를 고집하는 이유는 교회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예배의 취지를 아는 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나 자신을 봅니다.

나눔교회의 조직과 시스템은 일반 교회에 비하면 매우 빈약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교회는 시스템이 빈약하다, 엉망이라고 비판하며, 결국에는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의 시스템이 빈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름의 조직과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물론 그때그때 새롭게 적용하는 것은 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허술하게 보이는 시스템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은 나눔교회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문자를 기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봅니다.

이런 여러 이유로 나는 처음 교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러다가 교회가 망하겠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예배 시간도, 예배 형식도, 교육 시스템도 모두 기존의 익숙한 방식이 아니기에 눈에 띄는 성장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시작해서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는 재정적 압박감을 피하려는 유혹이 수시로 밀려오더군요. 이제 20년 가까이했으면 초월할 만도 한데, 여전히 그 유혹의 힘은 언제나 강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견뎌온 것만 해도 대견하다고 나 자신을 칭찬해 봅니다. “안 목사, 그동안 잘 견뎌냈다.” 언젠가 주님께서도 이렇게 평가해 주실 때가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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