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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社說] 이태원 안전 불감증

[사설 社說] 이태원 안전 불감증

이태원 안전 불감증

이태원 ‘안전 불감증’, 우리 신앙과 교회는 안전한가? 

지난 2020년 방송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한국은 물론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몰이로 각인됐던 이태원이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민을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몰아넣었다. 희생자와 그 가족의 슬픔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으로 전화한 이민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태원 압사 참사 소식에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를 비롯, 전 세계의 이민자들 모두 패닉에 휩싸였고, 소식을 접한 각 나라에서도 위로와 격려가 쇄도했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뒤엉키고, 압사당하면서 15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예전에도 크고 작은 압사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 사고는 한국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가운데 역대 최다 인명피해를 낸 사고로 기록될 것이라고 한다. “안전은 곧 국격(國格)의 가늠자”라는 말을 곱씹어 볼 때 군중 압사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人災)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고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드러나고 새롭게 밝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에 깊이 배인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을 원인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8년이 지났는데,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한국의 ‘안전 불감증’ 현실 속에서 우리의 조국이 정말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는지 의구심과 허탈함을 갖게 된다. 이번 참사는 대한민국의 안전도를 총체적으로, 나아가 구석구석 살펴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주장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데 이때만 잠시 등장하는 구호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핼러윈 문화(귀신 문화)를 향한 심판’과 같은 섣부른 판단과 정죄의 외침이 나타나지 않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을 실천하며 모든 정치‧신앙‧신학적 판단을 자제하며 이번 참사로 희생된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감하고 애도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많지만, 이민자들은 미국이 선진국답게 안전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을 전방위적으로 느낀다. ‘뭐 저렇게 오버하나?’ ‘겁이 참 많구나’와 같이 폄훼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맞구나’ 하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다는 이민자들의 말을 어렵지 않게 듣게 된다. 

156명이 숨진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여러 위기 신호를 무시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 특별하게 발생한 신호를 특별하게 무시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대한민국은 이런 환경에 익숙하다. 시쳇말로 푸쉬맨이 밀어대는 ‘지옥철’을 타 보거나, 한 사람도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콩나물시루 버스(Bus)’를 이상하지 않게 타고 다니는 서울의 출퇴근 상황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상황이 익숙하기 때문에 모이는 사람이나 통제하는 사람이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모여있는 것이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위기 신호는 사회와 국가적으로도 발생하지만, 개인은 물론 직장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도 울릴 때가 많다. 그런 신호를 무시하는 ‘안전 불감증’으로 일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커다란 위기와 사고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이 익숙하므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신호들이 많을 것이다. 

교계 안에도 오래전부터 울려오는 비상 신호들이 많다. 여러 신호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다음 세대, 미래 세대에 관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 교단 지도자들과 각 교회 목회자들은 이미 위기의식을 가지고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루하루를 심각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개혁은 언제나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됐고 지금 우리 시대에 다시 한번 종교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무르익은 지 오래다. ‘어어…’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목회자에게 들은 말이다. “각 교회가 EM 사역자를 다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을 모두가 안다. 여러 교회가 함께 힘을 모아 공동으로 지원해서 세우는 EM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이런 유의 견해를 너무 급진적이라고 논외로 여겨왔다. 이러한 개혁적인 전략도 교단 차원에서는 찬찬히 고민해볼 수도 있다. 우리가 속한 SBC의 교회가 1년에 약 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다는 신호, 젊은이와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제2의 출애굽(엑소더스)으로 일컫는 이 위기 신호에 모두가 심각하게 반응해야 ‘참사’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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