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7서신”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7서신”
인문학 고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읽다가 기독교 고전을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고전이란, 예수님의 제자들 이후 시대부터 생산된 서신과 저작들을 의미합니다. 부끄럽게도 목사가 되어 30년의 세월을 보냈는데도 기독교 고전을 읽기는커녕 관심도 갖지 못했습니다. 인문학 고전들은 뒤적이면서도 신앙의 고전들을 살피지 못했던 것들이 부끄럽습니다.
기독교 고전연구는 천주교에서는 제법 활발하게 발달된 학문 분야입니다. 천주교는 고대 기독교 문헌학, 혹은 교부학으로 정착한 분야입니다. 한편 기독교(개신교)에서는 비교적 관심이 부족합니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고전은 신앙과 인문학의 보고(寶庫)입니다.
기독교 고전은 시기적으로는 신약성서 기록 이후 시대(속 사도시대)부터 7세기 혹은 8세기에 이르는 기독교 문서들을 가리킵니다. 기독교 고전의 내용은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인정하는 기독교 정통 신앙을 가르치는 문서들입니다. 당시의 신앙과 영성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일 뿐만 아니라 깊은 울림이 있는 가르침과 영적 지혜를 전하는 자료입니다.
특별히 2세기 혹은 3세기에 저작된 서신들과 역사적 자료들은 비록 정경으로 분류되지는 못해도 상당한 무게가 있는 문서들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과 바울에게서 직접 배운 속사도 교부들의 가르침은 초기 기독교의 신앙과 삶의 문제들 그리고 교회가 직면했던 도전들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배웠던 그들의 관심과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제공합니다. 앞으로 기독교 고전을 정리하여 소개하려 합니다. 금번 호에는 기독교 고전의 개괄적인 안내와 함께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남긴 7서신을 간략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앞으로 이런 신앙 고전들을 안내하면서 초대 교회의 신앙 유산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안디옥교회 담임 목회자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요한의 제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후계자로 안디옥교회 감독으로 활동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초대교회 뿐 아니라 온 교회사를 통하여 매우 귀중한 신앙의 증언을 남겼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와 바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사도 요한의 직제자였다고 전해집니다. 초대 교회 전설에 의하면 그는 마태복음 18장에 예수님께서 만지신 아이라고 합니다. 2세기 교회 공동체가 이그나티우스를 그만큼 존경하고 귀히 여겼습니다.
이그나티우스 감독은 시리아 안디옥교회를 목회하면서 그리스도를 주(主)로서 선전했다는 이유로 체포됩니다. 그는 곧 사형선고를 받고 안디옥에서 여러 도시를 거쳐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잔인한 로마 군병들에 의해 끌려가면서 몇 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가 머물렀던 서머나와 드로아에서 자신을 방문해 주었던 교회들에 편지를 보냅니다.
이그나티우스가 남긴 서신은 모두 7개인데, 6개의 서신은 수신자가 교회들입니다. 6개 서신의 수신 교회는 에베소, 막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필라델피아, 그리고 서머나교회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에베소교회는 빌레몬서에 등장하는 오네시모가 담임 목회자였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서신은 자신의 동역자이자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서머나교회 폴리갑 감독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의 편지들에서 밝힌 그의 소원대로 로마에서 맹수형을 받아 순교합니다. 그의 순교는 당시 잘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폴리갑, 오리겐, 제롬 그리고 유세비우스의 증언에 의하면 로마에서 야수의 밥이 되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그나티우스의 인격과 신앙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그가 거쳐 간 도시들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그나티우스를 존경하고 더욱 사모하였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로마교회는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구명운동을 강하게 전개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로마교회에 보낸 이그나티우스의 서신에서 그는 구명운동을 강하게 만류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강청합니다.
개인과 교회에 보낸 개인적인 편지들이 회람문서가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순교한 후에 그를 특별히 존경하고 사모하였던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폴리갑 감독에게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을 베껴서 보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폴리갑 감독은 빌립보교회에 편지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던 주변 교회들도 그 편지들을 구하고, 보급되어 회람되면서 2세기, 3세기 교회에 중요한 문서로 유통되게 되었습니다.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편지를 보낸 6개 교회 중 로마교회를 제외하면 모두 이그나티우스를 찾아와 위문했던 교회들입니다. 그 교회들에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하고 방문했던 목회자와 성도 대표를 언급하며 칭찬합니다. 죽음을 향해 압송되어 가는 신앙인이 보여주는 여유와 담대함이 아름답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6개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의 질서와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감독(목회자), 장로 그리고 집사들의 권위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따르지 않는 행태를 강하게 질책합니다. 심지어 주교를 그리스도 대하듯 대하라고 권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이은 사도들은 대단했습니다. 사도들의 권위가 그대로 속사도 교부들에게 이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목회자의 권위나 리더십에 도전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권위에 순종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참 신앙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그나티우스의 중요한 관심은 유대교와 영지주의자들의 도전으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매 서신마다 이단 문제를 언급합니다. 이단에 빠져서 순수한 신앙에서 이탈되는 것을 막는 길은 예수님을 닮은 것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자신의 순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순교가 방해받을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찬란히 빛나는 신앙인의 야성이 부럽습니다. 그의 당당한 순교를 목격했던 서머나 감독 폴리갑도 화형되어 순교자 반열에 들어갑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이렇게 지켜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