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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스턴 신학칼럼-정우현 교수]
신앙성숙의 단계-신앙성숙의 4단계
1단계: 아브라함 이야기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미드웨스턴 신학칼럼-정우현 교수]</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신앙성숙의 단계-신앙성숙의 4단계</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1단계: 아브라함 이야기</span>

정우현 교수 –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석사원 디렉터

아브라함 에피소드#5(하):

이삭을 낳고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다(창 21:1-22:24)

역설 1: 하나님은 주신 것을 달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에게 또 기회가 왔다. 한 단계 더 성숙할 기회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다. 성숙의 기회는 이처럼 매우 역설적인 상황으로 찾아올 때가 있다. 아브라함이 ‘왜? 귀하게 주신 아들을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달라고 하시지?’라는 의문을 가졌다는 내용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삭을 제물로 바칠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무엇이 그를 준비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였을까?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체험하여 배웠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신앙성숙의 필수조건이다. 문자적으로 믿었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면서 하나님 존재에 대한 확신이 배가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상들을 통해 전해진 전승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시고 그에게 약속하시고 그를 위한 약속을 성취하시는 일들을 직접 경험했다. 전해 들었던 여호와 신이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신 것은 그를 성장시킨 거대한 사건이었다. 여호와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었다. 노아 할아버지를 시켜 방주를 짓게 하고 대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물로 덮으신 분이었다. 바벨탑을 쌓았던 교만한 인생들의 언어를 한순간에 혼잡하게 하신 전능한 하나님이셨다. 그 하나님이 자기를 일대일로 만나 이야기하고 약속하신 이삭을 주셨다.

생각해보자. 축구장에서 선수가 팬에게 유니폼을 벗어주면 그 팬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어느 날 축구선수 메시가 팬 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찾아왔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메시는 생각지도 못한 약속을 한다. “제가 당신을 위해 앞으로 저의 모든 경기를 무료로 관전하고 당신의 배우자와 자녀들도 당신과 함께 경기에 올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 중에 축구선수가 되길 희망하면 제가 반드시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만들겠습니다.” 이런 뜻밖의 약속을 한다면 그 팬은 매우 행복할 것이다. 과연 아브라함이 느꼈던 행복감은 이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가 경험한 기쁨은 이 메시 선수의 팬이 느낀 기쁨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역설 2: 드리는데 왠지 평안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위대한 존재라는 높은 자기가치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아, 난 귀중한 존재구나. 창조자 여호와께서 이렇게 나를 특별히 생각하시니 행복하다.’ 그는 이삭을 낳으리라 상상도 못 했지만 결국 하나님 말씀대로 이삭을 품에 안았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는 전에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했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창 15:2) 하지만 이삭을 품에 안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다. ‘왜 하나님은 내가 젊었을 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나이에, 왜 그때 이 아기를 주지 않으시고 나이 들어 갖게 하셨을까?’ 아브라함은 엄마 품속에 안긴 이삭을 볼 때마다 이삭의 존재를 신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이 많으신 여호와께서 내가 젊을 때가 아니라 나이 들어내게 소망이 없을 때까지 기다리신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이삭을 갖게 된 기적을 체험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변화되고 있음을 알았다. 그 변화는 신념의 변화였다. ‘그렇지. 그게 아니었어. 사람이 원할 때가 아니라,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였어.’ 어느 순간 그는 깊은 영감에 무릎을 쳤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사리 깨달을 수 없는 이 중대한 사실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했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나에 관한 것도 아니고 강대국 애굽 바로 왕에 관한 것도 아니다. 여호와의 세상이다. 그가 원하시는 일이 그가 원하시는 때에 그가 원하시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좀 더 하나님 관점으로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이 차원 높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신앙인에게 그것이 가능하다. 바울이 사울일 때 예수쟁이들이 미웠다. 그는 율법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그였기에 예수쟁이들은 불법을 행하는 악한 자들이었다. 그의 관점에서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 악인이고 지키면 선인으로만 판단했다. 그런 그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이 깨어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다. 그 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로 바뀌었다. 그것은 그가 영적인 장님으로 살다가 눈을 뜨고 밝은 생명의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바울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말씀하신 그 주님을 만난 충격은 어마어마한 충격 후 사흘 동안 씨름했다. ‘그래 난 예수를 핍박했다. 난 그 예수가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한 정신병자라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이 미웠고 잡고 죽이는 일에 열심히 했다. 그런데 과연 그 열심은 무엇이었는가?’

역설 3: 하나님께서 이걸 원하셨던 것 같았는데 사실 저걸 원하셨다.

제임스 파울러 이론을 빌린다면,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탈피하고 인생의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성숙의 주요 변화 중 하나다. 이 변화는 고통을 동반한다. 생각의 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쉽게 바꾸는 사람은 없다. 패러다임에 담는 생각의 내용은 매번 다를 수 있어도 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의 패러다임을 도전하는 현실 경험을 주로 부정하거나 회피한다. 이때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성숙의 기회로 삼고 받아들인다면 유익한 변화를 상으로 얻게 된다. 푸시킨의 말대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는” 대신 그 충격적 순간을 내 생각의 박스에서 나오는 기회로 선용해야 한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질문 없이 “사랑하는 독자”(창 22:2)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한 준비를 했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태울 나무를 쪼갰다. 사흘 길을 가야 했기에 수행할 사환과 함께 식량을 챙겼다. 준비할 것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래서 준비물 하나하나를 챙길 때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이 더욱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왠지 모를 평안함이 마음에 느껴졌다.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드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했다. 마침내 모리아 산에 도착했다. 사흘 동안 왔다. 문득 이삭이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대답했다. “그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다!” 이삭은 평소에 아버지가 하나님께 제사하는 모습을 보며 제사에는 제물이 필수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이삭은 궁금했다. “제사에 필요한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 왜 없나요?” 이에 아버지는 이상하리만큼 평안한 마음을 말로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이 원하시는 번제할 ‘어린 양’(창 22:8)을 친히 준비하셨을 거야.”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모리아 산까지 걸어온 지난 사흘간의 시간 동안 하나님 그분이 인생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더욱 마음 깊이 내면화했다.

실제로 그는 주저 없이 어린 아들 이삭을 묶고 칼을 들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여호와께서 그를 불렀다. 알고 보니 시험이었다(창 22: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시험으로 생각하지 않고 독자라도 아끼지 않았다. 하나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은 시험하신 것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실제라고 믿고 순종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성숙하기 위해 매 순간 갈림길에 선다. 이 두 갈래 길은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는 길과 하나님의 뜻이 믿음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불순종의 길이다. 하나님의 의도가 시험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진지함이 우리를 성장케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평가하셨다.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22:12 부분).

요컨대, 우리의 신앙성숙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역설을 더 많이 경험한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 사역이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신앙성숙의 기회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가 사람의 작은 생각 박스를 한 꺼풀 탈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성숙의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더욱 인정하게 되었고 주권자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아브라함 자신이 실제로 가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을 경험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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