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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52) “상처를 극복하라”

[무화과나무 아래서](52)  “상처를 극복하라”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상처를 극복하라

세상 살다보면 좋은 일도 생기지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때론 그 상처를 평생 해결하지 못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역대상 27장에 나오는 남유다의 11대 왕 요담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요담은 청년시기에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된다. 그는 그 일로 평생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예배의 자리에도 나오지도 않았다. 비록 정직하게 정치했는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가 경험한 충격적인 일은 요담의 아버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는 52년간 남유다를 다스린 탁월한 왕이다. 군대를 30만 명으로 키우고 모든 군인을 활과 창으로 무장시키고, 망대와 성곽을 보수하고, 치수사업을 활발하게 하여 군사력과 경제력을 일으킨 위대한 왕이다. 주변국들이 남유다에게 조공을 바칠 만큼 남유다를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뭐든지 잘나갈 때 생기지 않는가. 웃시야 왕이 너무 잘나갔나 보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결국 교만하여 죄를 범하게 된다.

웃시야의 범죄는 성전에서 분향하려고 한 것이다. 분향이 무슨 큰 죄냐고 하겠지만, 구약시대에는 제사장과 왕의 역할이 달랐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은 구별된 제사장만 할 수 있는 거룩한 일이었다. 그런데 왕이 마음대로 분향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웃시야를 징계한다. 눈에 잘 띄는 이마에서부터 문둥병이 생겼다. 문둥병은 하나님의 저주를 의미한다. 웃시야는 이때부터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별궁에 거하며 나라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죽은 뒤에서도 왕의 묘지에 묻히지도 못했다. 

잘나가던 아버지가 회복 불가능한 처지에 놓이는 것을 요담은 직접 보았다. 요담은 이 사건으로 너무 충격 받은 나머지 평생 동안 성전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죄악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고, 징계가 무서워서 들어가기를 두려워했다. 그는 왕궁과 성전 사이에 담과 성전문을 건축하고 성전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얼마나 멀리하고자 했으면 중간에 담과 문을 더 만들었겠는가. 보통 ‘담 쌓고 살아요’라고 하면 신경도 안 쓴다는 것 아닌가. 요담은 요‘담’이라는 이름처럼 성전과 담을 쌓고 하나님을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왕의 모습 때문인지 백성들은 타락하였고, 주변 나라는 침략해왔으며, 요담도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요담이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왔다면 그의 삶과 이스라엘은 달라졌을 것이다.

요담은 상처 때문에 한발은 하나님에게, 한발은 세상에 두고 적당히 살았던 사람이다. 상처 때문에 하나님과 거리를 둔 미련한 신앙인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요담 같을 때가 많다. 상처를 부여잡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떠난다. 그러나 상처 때문에 축복의 근원이요, 회복의 근원인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지 말라. 오히려 힘들어도 나아오라. 우리 상처를 품는 주님 앞으로 서라. 그때 십자가에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신 아버지께서 품을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 4:8a)’

로버트 머레이 목사는 하나님과 가까이 살라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이 작게 보일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그분의 임재 속에 살면, 세상의 모든 아픔과 염려는 작아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란 며칠씩 금식하거나 부흥회에서 목 터져라 소리 질러야 경험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자리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제는 나의 죄악, 나의 소망, 나의 상처라는 걸림돌을 극복하고 그분의 임재 속에서 살자. 우리가 이 걸림돌을 넘어갈 때, 아버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어떻게 우리를 이끄시는지 비로소 축복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경건한 종교의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가까이하면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 보이고, 주변 사람이 달라 보이게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아버지와 함께라면 평안의 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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