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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목회단상 牧會斷想]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생명 없는 색깔로 변한 사랑 앞에서 절망과 후회로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사랑을 죽게 하다니!’ 눈앞이 캄캄해져 허둥대며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하다 ‘혹시나’하는 기대로 사랑을 만지고 또 만지고 또 만져도 칼바람으로 정을 끊은 듯 싸늘한 채 반응이 없다.

나는 질문을 했다. ‘사랑과 욕망의 관계는 원수일까? 동반자일까? 사랑으로 위장한 욕망의 가면에 속았던 것일까?’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다 영원한 이별이 서러워 멍하니 굳어진 시체를 바라보았다. 깊은 한숨을 따라 중얼거림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욕망이었어. 너의 작고 귀엽고 고고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움이 주는 짜릿함에 빠진 걸 난 사랑이라고 착각했어. 그래서 너에게 수시로 다가가 엄지와 검지로 살포시 터치하며 욕망을 채우곤 했지. 하지만 사랑한 것도 사실이었어. 물이 필요한 듯 보이면 물을 주고 햇빛을 원하는 듯하면 창가로 옮기고, 영양제를 주면서 잎에 묻은 먼지를 윤이 나도록 닦았어. 살 것도 없으며 널서리에 가 ‘네가 좋아할 것이 없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엊그제 봄을 맞이한 듯했는데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까지 지난 깊어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창밖, 찬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 하나가 스위치가 되어 뇌에 불을 켠 듯 눈과 머릿속을 밝혔다. 초록색을 띤 무성한 단풍나무 잎들이 실망스럽게 보였다. ‘가을이 되면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야 할 잎들이 겨울인데도 검푸르다니.’ 한숨을 쉬다 무릎을 ‘탁’ 쳤다. 따뜻한 실내에서만 지낸 어린 단풍나무가 가을이 벌써 가고 겨울 온 것을 모르는 것을 알고서. 난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단풍으로 물들어야 하는 계절이 벌써 지났음을 알려 줘야지. 그리고 따뜻한 방 안에서 환상적인 칼라를 감상해야지.’ 때 늦은 단풍놀이를 편히 즐길 기대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빨간색일까? 자두색일까? 갈색일까? 주홍색일까? 초록과 빨강이 섞여 있을까? 하루는 초록, 다음 날은 갈색 섞인 초록으로 변할까?’ 상상이 인도한 색깔 천국을 나는 즐기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화분을 창밖으로 내어놓았다. 그리고 어깨를 실룩거리며 나무에게 “밤새 찬 바람을 맞으며 네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깔로 잎을 예쁘게 물들여야 해. 물도 충분, 영양도 충분, 햇볕도 충분하게 섬김을 받았으니 은혜는 갚아야지.”라고 신사답게 거절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밤이 길었다. 비몽사몽간 뒤척거리던 나에게 창문으로 하얀색을 띠고 열리는 하늘이 보였다. 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에 펄쩍 튀는 놀란 토끼처럼 후닥닥 일어나 창밖으로 튀어 나가 단풍나무를 살펴보았다. 아직 희미한 빛에 비춘 색깔은 여전히 초록색이다. 환하게 불을 켜고 잎을 들추어 뒷면까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붉은색의 기미는커녕 생기 넘치는 건강한 초록색이다.

‘변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거야, 기다려 줘야지.’ 기다림과 기대로 창밖 들락거리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하지만 아침이 지나고 점심도 지나고 다시 어둠이 내리는데도 어린 단풍나무잎의 색깔은 그대로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때 퍼뜩, 노을 지는 하늘에 느닷없이 반짝 나타나는 샛별처럼 뇌에서 ‘이 정도의 추위로는 단풍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지!’ 했다. 나는 입가에 욕망을 채울 이의 미소를 지었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또 하던 어느 한 날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칼바람 부는 날이 왔다.

‘오늘 밤, 가을이 지나고 겨울 온 것을 단풍나무는 화들짝 놀라며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고운 색깔로 잎들을 허둥대며 물들이겠지.’

땅거미가 깔리자 북풍 부는 뒤뜰에 화분을 내어놓고 시간을 뛰어넘으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곱고 화려하게 물들 단풍잎의 기대와 상상이 설렘이 되어 깊이 잠들 수 없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는 동안, 그래도 시간은 흘렀나 보다. 커튼 사이로 비추인 뒤뜰 하늘이 하얗게 열리기 시작을 했다. 흥분된 기대로 북풍의 칼바람 부는 뒤뜰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나갔다.

‘초록의 잎들이 화려한 색깔로 바뀌어 있겠지.’

뒤뜰의 불을 밝혔다. 아뿔싸! 초록색 잎들이 흰 녹색으로 변한 채 바짝 말라비틀어져 있다. 화분 전체는 얼음덩어리가 되었고, 난 혼이 나간 듯 허둥대며 화분을 방으로 옮기고 나무에도 잎에도 따뜻한 물을 뿌렸다. 그리고 살아나길 기대하고 무릎을 꿇은 채 목마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황망함을 떨칠 수 없어 방안을 서성이다 돌아와 보고 또 보아도 여전히 생명 없는 흉한 색깔 그대로이다.

‘하루아침에 깨어날 수는 없겠지.’

기대를 품고 며칠을 기다려도 소용이 없다. 더 많이 시간이 흐르고 얼었던 화분은 녹아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바싹 말라비틀어진 잎들은 가지에 그대로 흉하게 매달려 있다. 어린 단풍나무와 영원한 이별을 슬픈 마음으로 작정한 후에야 욕망을 채우려 단풍나무의 환경을 억지로 바꾸며 죽음에 이르게 한 어리석음이 보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물려받은 DNA에 따라 태어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자라는데, 난 단풍나무가 언제 어디서든 쌀쌀한 가을이 되면 성장을 멈추고 잎을 아름답게 물들일 줄 알았다. 들은풍월로 얻은 얄팍한 지식에 욕망이 합세해 어린 단풍나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씨앗에서 새싹으로 태어나 따뜻한 햇살과 뜨거운 햇볕, 탈듯한 가뭄과 모진 비바람과 추위 그리고 이불처럼 포근한 눈 덮임을 경험하며 자라 그것에 맞게 고유함을 드러내는데, 난 따뜻하고 충분한 햇빛과 영양을 공급해 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수고의 대가로 보상을 받아 욕망을 채우려 했다.

‘네가 태어나기 전 난 너의 씨앗을 예쁘고 고상한 화분에 심었다. 아마도 어미 나무로부터 분리의 아픔을 겪으며 외롭게 땅속에서 기다렸겠지. 무한정의 햇빛과 산들바람,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과 대지에 널려있는 다양한 양식을 그리며. 그러다 따스한 봄날, 껍질을 깨고 나와 싹을 틔우고 대지의 공기와 풍요하게 널린 땅속의 양식을 공급받으며 여름 내내 자랄 꿈을 꾸었을 테지. 하지만 터가 너무 좁아 자랄 수 없어 본래 너의 운명이 그런 줄 알고 잎만 푸르르게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었지? 잎을 단풍으로 물들여야 할 가을이 왔을 땐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했을 것이고. 성장을 멈춰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 갈등도 했겠지? 방 안의 따뜻한 온도는 성장을 멈출 필요가 없다고 확신을 주었을 테고. 나는 주어진 환경에 힘겹게 적응하며 생존하는 너의 삶을 꿈에도 그리지 못했다. 그리고 좁은 화분에 너를 가둔 채 욕망에서 나온 열정과 섣부른 지식으로 온도와 빛을 조절하며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즐기려 했다. 그런데도 너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어. 때로는 뿌리가 상하는 아픔까지 겪었을 텐데. 아름다운 단풍의 소박한 꿈도 포기하고, 모진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온 너에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마음이 아리다 못해 찢어질 듯 아프다. ‘이기적인 탈을 쓰고 너를 대한 나의 어긋난 사랑을 이제 알았는데 너는 이미 생명을 잃었구나.’

단풍나무를 떠나보내기 서러워 며칠을 더 기다리다 고개를 힘없이 타래밀고 말라비틀어진 희끄무레한 잎을 가지에서 떼어내고 있었다. ‘시체를 깨끗하게 단장해 보내줘야지.’ 이별을 작정하고 마른 잎 하나를 떼어 내었다. 이때다. 잎이 떨어진 그 자리 바로 위에 속눈썹을 깜박거리듯 희고 연한 연둣빛을 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나 죽지 않았어’ 하면서…. ‘아- 아! 사랑이 살아 있다.’ 그러곤 생긋 웃으며 이야기하는 듯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너의 욕망을 미워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추위가 오면 죽은 척하고 생명은 깊은 내면으로 숨어 버리지. 그러다 다시 따듯해지면 숨었던 생명을 드러내거든. 갑작스러운 이상기온 때문에 잠시 깊은 곳으로 숨었다 나왔을 뿐인데, 허둥대고 놀라긴….’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욕망을 사랑인 줄 착각해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나에게 덧붙여 ‘사랑은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야.’ 했다. 나는 놀라 ‘욕망에서 나온 사랑도 사랑이라고?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던데…’ 했다.

“육체의 욕망에서 온 사랑을 통해 종을 번식하는 것 몰라? 어머니의 사랑도 욕망에서 온 것 아니야? 물론 무지와 이기심에서 온 사랑은 그 사랑을 통해 아픔을 낳지. 그래서 너희들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하지. 그러나 그 아픔을 통해 자신을 보고, 진리를 깨달으며 성숙하기도 해. 그래서 너희들은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사실 사랑과 욕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야. 악과 선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듯.”

나는 머리가 맑아지는 듯, 마음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리송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욕망과 욕망이 이끌리고 무지함 때문에 너를 고통스럽게 한 어긋난 사랑도 하나님으로 온 것이란 말이야?’ ‘그렇지.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의아한 눈으로 연한 입술을 바라보는 나에게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왔지만, 그것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느냐, 고통의 열매를 맺느냐’ 결정이 되지. 악도 선하게 만들 수 있고, 선도 악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왔지만, 그 열매의 모양은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이지.”

‘그러면 그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해?’

‘내가 하는 사랑의 근원이 무엇인지, 욕망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야. 내 안에 있는 것들의 근원이 보이면 욕망과 사랑을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가꿀 힘이 생기지. 이기적인 욕망에서 온 사랑도 그 실체를 보면 상대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고, 행복하게 할 사랑으로 변화되거든. 물론 내 의지가 필요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거야.’

‘하나님은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인간 스스로 존재가치를 높일 수 있게 하려는 것 아닐까? 욕망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은 자기를 태어나게 한 욕망을 아름답게 가꾸고, 다시 그 욕망은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에너지가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러며 사랑은 상대를 위한 배려하는 마음, 아껴주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진리 안에 있게 하고 싶은 마음, 희생하는 하나님을 닮은 맑고 아름다운 마음이 되는 것이고. 그런데 이기적인 욕망에 노예가 되어 있으면 결국 사랑을 가꾸지 못하여 사랑이 고통의 원인이 되고, 욕망은 못된 것에서 온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지. 사랑으로 욕망을 가꾸어 욕망이 꿈과 에너지가 되어 결국 존귀해지는 것인데, 너희들은 사랑 때문에 울고불고 미워하고 후회하곤 하더라.’

‘그래서 미안해하지 말라고 한 거야?’

‘응, 난 너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모두 용서할 필요가 없어. 어긋난 사랑도 네가 성숙하게 되는 도구가 됐잖아. 나를 아껴준 사랑만 기억할 거야. 그러니 미안해하기보다 성숙한 욕망을 가지고 사랑하며 생명의 신비를 즐기며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 행복을 누려 봐. 그것이 내가 너를 향한 사랑이거든.’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연한 연두색의 입술로 이야기하는 음성을 들으며 약속했다. ‘봄이 오면 너를 화분에서 꺼내 정원 중앙에 심을 거야. 따뜻한 봄의 햇살도 즐기고, 여름의 시원한 소나기와 세찬 바람과 하얀 서리도 칼바람도 맞으며 튼튼하게 자라 새들이 너의 품에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큰 나무가 되도록. 그리고 봄이면 난 너에게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즐기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을 즐길 거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기쁨을 누리고, 겨울엔 너의 앙상한 가지를 보며 사랑과 욕망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희로애락을 생각하며 명상에 잠기곤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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