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자라지 않는 아이 – 펄벅
작가 펄벅의 생애
“대지”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 펄벅(본명:Pearl Sydenstricker Buck)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다. 펄벅은 1938년에 미국의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언론인들이 선정하는 퓰리처상도 수상하였다. 펄벅은 한국과의 인연도 매우 깊다. 그녀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스로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하여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와 ‘새해’ 같은 한국 사회를 소개하는 소설도 있다.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쓴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는 1881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의 한국 상류 가정의 변천을 묘사하는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울러 펄벅 여사의 유지를 따라 건립된 펄벅재단은 지금도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활발하게 돕고 있다.
펄벅의 생애와 작품활동
생후 수개월 만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왕성한 중국 선교활동은 펄벅이 자신을 중국 사람으로 생각했었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애착을 갖게 했다. 펄벅은 1910년 대학생활을 위해 미국에 갔다가 1914년 대학졸업 후 중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1917년, 뒤에 중국 농업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과 결혼하였고 이때 성이 “Buck”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은 지적 장애인이었다. 자서전에서 펄벅은 큰 딸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 딸은 《대지》에서 왕룽의 딸로 그려져 있다). 굴곡 많은 그녀의 삶이 그녀를 작가로 만들었다. 그녀는 평생 7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다작으로도 대단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작을 남겼다.
자라지 않은 아이 저술 배경과 내용
장애아인 첫째 딸 캐롤은 어린 시절 말이 늦었고 산만해서 집중을 못했다. 펄벅은 이상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저 조금 이상할 뿐이라고 여겼다. 아이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던 펄벅은 유명한 의사를 찾아 미국을 샅샅이 뒤졌다. ‘고칠 수 있습니다’라는 확신의 찬 의사의 진단을 원했지만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있습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희망이 없습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병원에서 검사결과를 듣고 걸어 나오던 펄벅을 어느 독일인 의사가 불러 세운다. 의사는 “제 말을 들으세요! 아주머니 아이는 정상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마세요. 아이는 아주머니의 평생 짐이 될 겁니다. 짐을 질 준비를 하세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는다. 그제야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다. 영영 자랄 수 없는 아이를 받아들였다.
펄벅은 정신을 차리고 캐롤의 장래를 위해 글을 가르친다. 글자를 알면 딸이 현실을 이해하고 지능도 좋아질 것만 같아 그녀는 하루 종일 딸 곁에 붙어서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어느 날 펄벅은 연필을 쥐고 있는 어린 딸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기쁘게 하려고 너무 힘들게 글을 배우고 있구나?’ 펄벅은 다시 한번 더 정신을 차린다.
그녀는 글자나 숫자를 무리하게 가르치는 것이 딸의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녀는 딸이 밝게 웃던 모습을 생각하며 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애아 학교를 찾는다. 그래서 찾은 곳이 베인랜드 특수학교다. 캐롤은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20세기 초 지적장애에 대한 이해도는 굉장히 낮았다. 당시 서양의 대다수 유명인사들은 정신지체아를 숨기고 살았다. 정신지체가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고 그 아이와 가족들은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처칠 같은 사람은 ‘정신적 퇴화자들’의 강제 불임수술을 주장하기도 했던 시대다. 이런 시대에 펄벅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 놓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 놓는 펄벅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 겪은 일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더 힘들다. 오늘 아침 겨울 숲 속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다닌 끝에 마침내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이 나에게 물은 것은 대개 두 가지였다. 첫째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하느냐는 것과 둘째로 이런 아이를 갖게 된 슬픔을 어떻게 견뎌야 하겠냐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는 답할 수가 있었지만, 두 번째 질문은 정말 힘들었다.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을 인내하는 법은 혼자서 배워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내는 시작일 뿐이다.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 이 글은 이 책의 시작부분이지만, 결국은 이 책의 결론이기도 하다.
장애자 가정의 아픔과 슬픔의 극복을 위한 책
펄벅이 장애를 가진 자신의 딸을 공개하기까지 30년 걸렸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 이런 용기로 자신의 아픔을 공개한 것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장애아 가정들과 그 어머니들을 위한 사랑과 격려다. 이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50년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는 지적장애의 원인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당사자들은 지적장애를 수치스럽게 느꼈다. 이 책은 로즈 케네디가 자신의 지적장애아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정신 질환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를 바꾸는데 기여했다.
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펄벅의 경험은 정신지체아를 가진 부모들에게 위로의 메시지기도 하고 고통을 극복하는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엄마로서 아이의 장애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사회의 편견으로 인한 아픔, 정신지체아와 함께 살아가는 실제적인 지혜들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다. 게다가 세계적인 작가의 섬세한 관찰과 묘사는 아픔을 느끼게 하고 아픈 자에게 위로와 용기가 된다.
장애아동을 가지게 되면서 펄벅여사는 세상 사람들을 둘로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을 아는 사람과 그런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다.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인생의 참된 지혜를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 삶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이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떨쳐 버릴 수 없는 삶의 아픔’을 이해하는 독자들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 아픔가운데서 위로와 격려를 얻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