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훈민정음 반지를 끼고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훈민정음 반지를 끼고
가족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티가 남지 않게 매일의 삶을 산다’ 이야기했다. 이때 딸이 “그렇지 않아요” 하며 의외의 반응을 한다. 어안이 벙벙해진 난 ‘내가 남기는 흔적이 무엇이냐?’ 물었다. 이에 불편한 눈빛으로 딸이 대답을 한다. “아침 식사 후 싱크대에 아빠가 사용한 접시와 컵이 매일 똑같은 모양으로 있어요.”
난 뇌리에 선명하게 비치는 증거 제시에 당혹감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침대 정리를 매일 단정하게 하는 것과 양치하고 거울을 깨끗하게 닦는 일을 자랑하고 싶었던 속마음은 숨기고 변명할 용기마저 잃었다. ‘너의 엄마가 디시 워시 사용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지적받는 것을 보고 싱크대 앞에 서는 것을 난 기권 했거든…. 며느리와 함께 살 땐 설거지를 잘했었는데….’
은퇴 후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가 옮겨 심긴 몸살 앓는 나무와 같다. 아내와 둘만이 조용히 살다 손주들과 맞추어 살려니 체력이 달린다. 이에 목회자로 누리던 특권은 모두 사라지고 하지 않던 소소한 일들을 서툴게 하며 서러운 마음이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지나온 삶이 영상처럼 떠 오른다.
생존의 위기를 느낄 때, 소박한 꿈과 욕망이 포기될 때, 불의를 무력하게 바라만 보아야 할 때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응답 대신 하나님 존재에 대한 질문만 일었다. 결국 이에 대한 답 얻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확신하고 신학을 했다. 그리고 교리와 성서에 녹아 있는 진리와 맑은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품에 들어 존재가치를 높이며 행복을 크게 할 확신이 서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무속 신앙과 율법주의 신앙의 허구와 상업화로 생명력이 쇠해지는 환경 가운데서 갈증을 느꼈다. 이웃 교회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과 먹고사는 문제까지 겹쳐 생수의 시원함을 즐기기보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때때로 존재가치를 느끼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적당히 상황과 타협하며 편하게 사는데 길들여지는 것이 느껴져 다시 목마름을 느꼈다.
이러한 나를 가면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몰아넣고 새로운 길로 인도를 하신다. 해 보지 않은 일들과 목회자로 대우해 주지 않는 벌거벗은 상황 가운데 두시고…. 이런 가운데 무의식 밑바닥에서 나를 조종하고 있는 가면 쓴 자존심과 욕심, 목회하며 스포일된 내 모습이 지적되며 신앙이 새롭게 정리가 된다. 비록 순간순간 마음이 상하고 미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흩어졌던 가족의 마음들이 공감대와 함께 신뢰와 사랑이 커짐을 느낀다.
이런 나에게 딸이 훈민정음 서문이 새겨진 반지를 선물로 준다. 글이 없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창제한 세종 대왕의 사랑의 마음을 담은…. 평상시 끼기 싫어하던 반지를 기꺼이 끼고 훈민정음 서문을 읽고 또 읽으며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 마음에 싣는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으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곳에, 낮아지는 곳에, 정직한 대화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임함을 누린다. 하나님이 주시는 창의력과 지혜와 신뢰와 공감과 사랑과 신선함이 커짐을 느끼며…. 그리고 합력하여 능력을 배가하며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될 가족이 꿈꾸어진다.
20여 년을 헤어져 살다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며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 그리고 문화와 표현 방법이 달라 갈등하는 우리를 한마음 되게 하시는 은혜가 새롭다. 말과 글을 통해 점점 서로가 이해의 폭이 넓어지다 훈민정음 서문이 새겨진 반지가 한마음 된 증표가 되게 하신다. 그리고 딸의 비즈니스와 나의 앞날의 지표로 삼게 하시며 합력하여 새로운 가치를 위한 도전을 함에 뒷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