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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귀한 섬김

[목회단상 牧會斷想] 귀한 섬김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귀한 섬김

시계 볼 필요도 없다. 사랑스럽다 미워지고 부글거렸다 변덕 부리지 않아도 된다. 연극하다 아부하다 공갈치며 한심스러워지는 나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다. 자유와 평화와 쉼이 널브러진 여유로운 토요일 새벽 침대에서 게으름을 즐긴다. 이때다. 망중한을 깨는 고음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손녀들 방으로부터 들린다. 무엇을 하는데 저리도 재미난 것일까? 지난밤 둘은 싸우며 울고불고했는데… 분하고 억울했던 감정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호기심이 일다 화들짝 윗몸을 일으켜 시계를 본다. 6시. 카나리아, 뻐꾸기, 닭, 고양이 울음소리, 장난감 교향곡, 행진곡, OMG를 번갈아 틀며 곤히 잠자는 손녀들을 깨우느라 진 빠지는 시간인데, 스스로 일어나 상쾌하게 재잘거리다 깔깔거리며 행복해하고 있다니! 아! 반복된 새벽의 수고들이 6시에 일어나도록 길을 들였다.

길들여지는 인간이 새롭다. AI가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욕심과 불의에 거룩한 옷을 입히고 득세하는 시대에 사랑하는 손주들이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 길들이고 싶은 습관들이 떠오른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를 하는 습관, 감사하는 습관,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습관, 준비하고 반성하며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습관, 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숨겨진 은혜를 헤아리는 습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습관, 만나고 헤어지며 상냥하게 미소로 인사하는 습관,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습관,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끝까지 책임을 지는 습관 등.

다양한 복된 습관들을 군침을 삼키며 상상하다 풀이 죽는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를 하려니 전통과 제도의 틀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에서 외로워질 것이 뻔하고,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니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교만과 이기적인 욕구가 입을 먼저 여는 것을 거스르기 힘겹다. 남을 존중하려니 상대하는 이의 얼굴에 약점과 못된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감사하려니 불평거리가 더 크게 보인다. 숨어 있는 은혜를 알려니 깊이 생각하고 낮아질 에너지가 모자라고,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으려니 몸이 고달파진다. 만나고 헤어질 때 상냥한 미소를 지으려니 감정이 생강 씹은 얼굴을 만들고, 그래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니 부정적인 것이 더 크게 보여 그렇게 하면 바보가 될 것만 같다.

여기에 악과 선과 약점과 강점을 함께 지니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감성과 이성, 지식과 경험 그리고 육체의 생존과 보호 번식 본능이 어우러진 가운데 사는 복잡한 인간으로서…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도 서로 오해하고 삐치고 미워하고 싸우며 서럽고 외로워하다 어— 하는 사이 한평생을 허망하게 훌쩍 날려 버리곤 하지 않는가?

그런 가운데서도 주어진 환경을 행복하게 만들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발버둥 치며 살다 인생은 허무하다 말하고, 더러는 주어진 환경을 운명으로 여기고 순한 양처럼 순종하며 그냥 그렇게 살고, 더러는 하나님께 도와 달라 떼쓰다 부족한 믿음을 탓하며 목말라한다. 이들 중 난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의지해 구한 것을 얻기 위해 율법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하지만 사랑하고, 헌신하고, 인내하고, 희생하고, 겸손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주일을 지키려다 이중인격자 된 나를 발견하고는 우울해하곤 하였다.

한심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다 좋은 습관 모두를 길들일 수 있는 쉬운 길 하나가 머릿속에서 반짝거린다. 은혜의 짜릿함이 느껴지면서… 자존심, 미움, 질투, 이기심, 욕심, 허풍, 돈이나 명예욕, 거지와 노예근성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가? 인간들이 만든 고정된 생각과 율법이나 사상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순간 내면세계를 보면 못된 생각과 감정들은 힘을 잃는다. 그리고 맑아지는 마음의 귀에 들려지는 사랑과 정의와 지혜가 담긴 언어가 들리고 이를 용기 내어 따를 때 인도받는 사랑의 품을 느낀다.

감정에만 충실하여 울고 웃기를 죽 끓듯 하는 귀여운 손주들에게 순간순간 내 내면의 주인 된 것을 보고 맑고 순수한 내가 되는 것을 보이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있을까? 부끄럽고 체면도 서지 않아 얼굴이 빨개지지만 못된 감정들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맑아진 마음과 절제된 감정에 들리는 음성에 귀 기울이고 따르며 수줍지만 단순한 삶을 본 보이며 길들이는 것보다 더 귀한 섬김이 있을까?

이렇게 길들여지는 손주들의 마음 밭에 지식과 지혜를 쌓아 간다면 존귀한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못된 욕심과 악에서 태어난 마음 밭에 뿌려진 지식들이 화려하고 거룩하게 포장된 옷을 입고 공허한 소리를 내는 시대에 수시로 변화는 감정으로 거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예쁘고 싶어 하는 손녀들에게 매 순간순간 마음을 거울에 비추는 본을 보이며 길들여지게 하는 일이 사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맑아진 마음 밭에 지식과 경험이 쌓여 세상과 자신에게 아름답고 귀한 열매를 맺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래라저래라 짧은 생각의 잔소리로 명령하고 가르치기보다는 이렇게 보고 듣고 따르는 일이 길들여지면 기도가 호흡인 것과 생명 있는 자신이 확신이 되고 신앙생활이 숨쉬기처럼 쉬워지는 것은 당연해지지 않을까? 신앙이 하찮고 어렵게 여겨지는 시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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