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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C. S. 루이스의 생애 산책(13)

[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기독교 문학 산책 – C. S. 루이스의 생애 산책(13)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C. S. 루이스 삶과 사상 산책 (13) 

루이스의 형 워런 해밀턴 루이스 소령

C. S. 루이스의 삶에 큰 축복은 좋은 형이 있었다는 것이다. 루이스보다 세 살 많은 워런 해밀턴 루이스는 평생 C. S.루이스의 친구요 조력자로 살았다. 루이스는 어린 시절의 삶을 회고하면서 자신에게 복이 되는 두 사람을 언급했다. 하나는 자기 뜻을 다 받아준 가정부, 그리고 형 워런(Warren)을 말했다. 그만큼 워런은 동생 C. S. 루이스에게 좋은 형이었다.

유명한 동생 C. S. 루이스에 비해 형 워런(Warren)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사람이었다. 워런 루이스의 삶을 추적하여 정리했던 마조뤼 램프 미드(Marjorie Lamp Mead)는 워런 루이스의 일기장이 아니면 그의 삶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워런은 동생의 유명세와 성공에 위축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려한 동생을 돕는 비서로 신실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워런 루이스는 어려서부터 의젓한 형이었던 것 같다. 두 형제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전혀 갈등이 없었다. 세 살 많은 워런 루이스가 형으로 동생을 잘 돌봐 주고 수용했던 듯하다. 형제는 공부도 같이하고 놀이도 같이하며 좋은 친구로 성장했다. 특히 아버지의 배려로 어머니와 셋이서 바닷가에서 한 달간 여름 휴가를 보낸 것은 둘의 우애와 우정을 배양시킨 좋은 기회였다.

학생으로 워런 루이스는 탁월한 것 같지는 않다. 마조뤼 램프 미드는 워런 루이스가 게으르고 불성실한 학생의 모습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워런 루이스는 커크패트릭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고 왕립 육군 사관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이 사관학교의 입학은 워런 루이스가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워런 루이스는 1차 대전의 발발로 생도 시절을 짧게 보냈다. 생도들은 통상 2년의 생도 생활을 보내며 교육과 훈련을 받는데 워런 루이스는 9개월 만에 졸업하고 임관하였다. 육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프랑스 최전방에 배치 받았고 전후에는 벨기에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 근무했다. 이런 군 생활에서 휴가를 얻으면 언제나 고향에 돌아와 동생과 더불어 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그가 가정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워런 루이스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했다. 그가 휴가 시간을 고향에서 보내고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아버지와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고 한다. 이것은 동생 C.S. 루이스도 같은 상황이었다. 멀리 중국 상해에 근무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가할 수 없었다.

워런 루이스는 18년간의 군대 생활을 마치고 대위(Captain)로 전역했다. 우리는 통상 워런 루이스를 소령(Major)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나중에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재징집되어 현역으로 복무했는데 그때 소령으로 소집되어 근무하다가 1941년에 예비역(Reserve)으로 전환했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 워런 루이스는 동생과 함께 살기로 했다. 동생과 함께 사는 것은 좋았지만 동생이 무어 부인(Mrs. Moore)과 함께 살고 그녀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이 불편했다. 특히 착한 동생을 함부로 대하고 힘들게 하는 무어 부인의 무례함에 대하여 아주 힘들어했다. 워런 루이스는 무어 부인의 집착과 무례함 그리고 동생의 우유부단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워런 루이스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불편함과 부정적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무어 부인과 동생의 관계였고, 또 하나는 자신의 알코올 중독증이다. 아마도 그는 군대 생활 중에서 알콜 중독증을 얻은 듯하다. 그는 이 중독증에서 헤어나기를 기도하며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워런 루이스는 게걸스럽게 책을 읽는 왕성한 독서가였다. 그는 글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글을 읽었다. 소설, 시, 드라마, 역사, 전기, 문학 비평 등을 열심히 읽었다. 그렇다고 신앙 서적과 신학 서적을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울러 워런은 왕성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의 성실한 일기 쓰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일기를 정리했던 책이 23권 분량이었다고 한다. 그는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역사책을 많이 읽었고 프랑스 역사를 다룬 영광의 세기(The Splendid Century) 등 십수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동생의 필력에 가리긴 했지만, 워런 루이스도 상당한 수준의 책들을 저술한 작가였다.

워런 루이스는 자신의 일기나 책 저술을 위한 글쓰기 외에 동생의 비서로 동생을 위해 많은 글을 썼다. 동생의 손가락이 약간 기형이어서 타이핑이 어려웠는데, 형인 워런 루이스가 비서로 동생의 팬이나 독자들이 보내는 편지나 질문에 일일이 답장을 보냈다. 그가 동생 CS 루이스의 이름으로 타이핑을 해서 보낸 편지가 1만 2천 통이라고 알려진다.

워런 루이스는 동생 C. S. 루이스와 함께 독서클럽 잉클링스(Inklins)에서 활동했다. 역시 동생을 돕는 역할이었다. 호스트였던 동생을 대신해서 차를 끓이고 참석자들을 환영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왕성한 독서가답게 책이나 글을 읽고 발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특히, 그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친절함으로 잉클링스의 유대 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워런 루이스는 C. S. 루이스에게 최고의 친구였다. 아울러 두 형제는 친구들이 거의 같았다. 동생의 C.S. 루이스의 친구들이 거의 형 워런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잉클링스 회원을 비롯한 루이스 형제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워런 루이스는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배려와 관용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었다.

워런 루이스는 신앙인이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교회를 다녔고 신앙을 가졌다. 그는 평범한 크리스천처럼 영적 갈등과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실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일기에 의하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만지시고 회복시켜 주셔서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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