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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 목사의 하.나.우 이야기 (26)] 열쇠 반납 (1)  

[박인화 목사의 하.나.우 이야기 (26)]  열쇠 반납 (1)  

IOO(Impact Of One) 재생산연구소장 박인화 목사 

열쇠 반납 (1)  

달라스 뉴송교회의 담임 목사로 정확히 21년 9개월을 섬겼다. 나에게 재정부를 제외한 교회 건물의 모든 사무실, 창고 등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master key)가 주어졌다. 초창기 시절, 밤중에 “교회 문이 잠겼으니 와서 열어 달라.”는 연락도 종종 받았다. 당시는 관리인이 없었기 때문에 마스터키를 가진 나는 교회 문을 여는 일을 감당해야 했다. 마스터 열쇠를 가진 사람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책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그리고 2022년 9월 은퇴와 더불어 21년 이상을 가지고 다녔던 열쇠를 반납한 것이다. 

은퇴(Retire)란 다 달아버린 타이어를 바꾸는 것으로 정의한다. 다 달아버린 타이어는 버리는 것 외에는 별로 용도가 없다. 그래서 “은퇴”를 “후퇴(retreat)”, “중단(stop)”으로 생각한다. 영국 사람들은 은퇴를(Become a pensioner) “국가의 연금을 수령하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그러다 보니 은퇴한 사람을 인생의 “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은퇴자는 과연 “고물”일까? 

일본의 오키나와섬에 사는 사람들은 장수로 유명하다. 장수촌 주민들에게 은퇴란 “ikigai”(이끼가이)이다. 뜻은 “why I wake up in the morning”(왜 아침에 나는 일어나는가?)이다. 은퇴를 고물 인생으로 간주하지 않고 “보물”을 찾는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은퇴란 후퇴, 중단 또는 연금을 수령하는 노인으로 이해하는 의식과 얼마나 다른가! 

은퇴(retire)란 불어 “retirer”에서 유래되었다. 뜻은 “to withdraw.”(일선에서 물러난다, 해 오던 일을 중단한다.)는 의미이다. 은퇴와 은퇴식 (an event)을 혼돈해서는 안된다. 은퇴식은 1회 적이지만 은퇴란 진행형이다. 얼마든지 보물을 찾을 수 있고 보물이 될 수 있는 무궁한 기회가 만나달라고 기다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일 10,000명이 은퇴를 한다. 은퇴 후 다음의 네 단계를 지난다.(Dr. Riley Moynes “The Ten Lessons: How You Too Can Squeeze All the ‘Juice’ Out of Retirement.” 참고). 네 단계는 다음과 같다. 

● 신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결혼한 나는 (올해 48년) 현충사로 신혼여행을 갔다. 신혼여행에서는 새벽기도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누울 수 있다. 때로 시어머니처럼 생각되는 성도들도 주위에 없다. 복장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심방이나 설교도 없다. 자유인이 된 것이다. 할렐루야! 

은퇴 이후의 신혼은 영원하지 않고 정해진 기간이 있다. 은퇴 후 신혼 기간은 평균 1년이다. 그다음은 달라스의 뜨거운 여름의 시들어 가는 야채처럼 점점 활기를 상실한다. “은퇴 이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란 생각이 들면 이미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 상실 

신혼 단계가 지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상실감이 찾아온다. 네 가지 상실감을 생각해 보자. 

– 일상(routine)의 상실: 목회자인 나는 새벽 기도회, 수요 저녁 훈련, 토요새벽기도회 인도, 주일 설교, 심방 등이 매일 계속되는 일상이었다. 그러나 은퇴 이후 분명하던 일상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일상(routine)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정체성(a sense of identity) 상실 

– 목회하면서 맺었던 성도들과의 관계 상실 

– 목적 상실 

위의 네 가지 상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나는 이처럼 소중한 것들을 상실한 고물 인생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회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과연 은퇴 후는 고물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기회로 가득한 아침을 맞는 것일까? 나는 교회에 열쇠를 반환하고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나오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발이 닿지 않는 무저갱(bottomless pit)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 “이처럼 어둡고 답답한 구덩이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골리앗보다 몇십 배 큰 절망이 찾아왔다. 절망의 그늘로 나는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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