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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정연희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

[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정연희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열악한 한국 기독교 소설

1987년 김진홍 목사 설교에서 들은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던 관계자들이 적잖이 당황했단다. 교회 규모는 세계적인데 기독교 문화는 너무 미천하다고 했다. 변변한 신학 서적이 없다고 했다. 알려진 주석이나 강해는 번역물 수준이고 당당하게 내놓을 만한 기독교 소설이 없다고 했다.

필자도 한국 교회를 대표할 만한 기독교 소설이 없다는 사실에 적극 공감한다. 일본은 작품성과 인지도 면에서 세계적인 신앙 소설이 많다. 한국 기독교 소설은 너무 열악하다. 세계적 수준은커녕 일반 독자에게도 자신만만하게 내어 놓을 만한 작품이 거의 없다. 신앙 인물의 삶을 토대로 엮은 인물 소설이 고작이다.

 

대표적 기독교 소설가 정연희

이런 척박한 한국 기독교 소설계에서 그래도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긴 작가들 중에 정연희 작가가 있다. 작가 정연희는 1957년 이화여대 국문과 3학년 재학 중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 후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화진’ ‘여섯째 날 오후’ ‘난지도’ ‘사람들의 고성’ 등 다수의 장편집을 내놓았다. 정연희 작품들은 대부분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대학 3학년에 등단을 하고, 이듬해 대학을 수석 졸업한 정연희는 수습기간도 없이 기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잘 나가는 여류 작가였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결혼을 한 작가 정연희는 이혼의 아픔을 겪는다. 이혼 후 작품 활동에 몰두했으나 늘 공허함에 시달린다. 그 후 오해와 실수로 엮인 간통 피소 사건 속에서 처절히 부서진 정연희는 드디어 하나님을 만난다. 1975년 세례를 받고, 성경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 작가 정연희는 자신의 작품 속에 신앙고백을 담고 있다.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요약

소설은 실제 인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맹의순은 평양 장대현교회 맹관호 장로의 아들이었다. 부친 맹장로는 평양의 소문난 부자였다. 그의 가족은 6.25 전에 서울로 월남하였다. 이 즈음 맹의순은 가족들을 차례로 잃는 큰 아픔을 겪는다. 그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목사가 되기 위해 조선신학교로 편입하였다.

신학생 시절 그는 토마스 아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일본의 신학자 내촌감삼(內村鑑三)의 저서들을 애독하며 주변에 이 책들을 읽어 보라 권하며 빌려주었다. 그의 신학과 사상의 뿌리와 성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출석하던 남대문교회에서 중등부 지도 전도사로 봉사하면서 열심히 노방전도를 하였고, 새벽기도회를 한 날에는 세브란스병원 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6.25가 발발하여 피난길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당시 미군은 최전선 2마일 안에서 집힌 사람은 피난민이건 학생이건 간에 모두 포로로 취급하였다. 북한 말을 사용하는 젊은이 맹의순은 포로가 되었다. 억울하게 거제도 포로수용소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맹의순은 그런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 수용소 군목은 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임을 알고 수용소 병원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는 수용소 내에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리며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수용소에서 공산군 병사들은 처음에 그를 ‘예수 미치광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틈만 나면 인민군 환자를 찾아가 성경을 읽어주고 중공군 환자를 찾아다니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포로들은 맹의순을 ‘거제도의 성자’라고 부르게 된다. 헌신적인 그의 섬김과 사랑을 보고 포로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물론 이 별명을 포로수용소 모든 구성원들이 인정하게 된 것이다. 맹의순 선생의 눈물겨운 사랑에 포로들이나 의료 종사자들이나 미군 관계자들이 모두 감동을 받고 그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맹의순 선생의 신분이 확인되었고, 수용소를 나갈 수 있었지만 그는 자원해서 수용소에 남기로 결정한다. 가장 열악한 형편에 있는 중공군 포로들 가운데 특별히 병든 환자들을 위해서 헌신을 했다. 그는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맹의순은 안타깝게도 불치의 질환인 뇌암 환자였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한 중공군 병사의 발을 씻어 주다가 앞으로 쓰러졌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미소가 담긴 평화로운 얼굴로 영원한 세계로 갔다. 그의 곁에는 발을 씻어 주던 물 대야와 성경 한 권이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 맹의순 씨의 죽음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미군 군의관도 한국인 행정관도 인민군도, 중공군 병사도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1953년 4월의 일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포로수용소의 밀알이 되었다. 청년 맹의순이 26세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례식에서 낭독된 것으로 알려진 어느 중공군 포로 환자의 추도문은 그의 삶과 그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

 

추도문에 나타난 맹의순의 삶

장례식에서 공개적으로 읽혔던 추도문에는 맹의순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맹의순은 의료진이 물러간 밤중에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중환자들을 일일이 찾아 그들을 위로하였다. 포로수용소는 불평과 원망의 공장장이었다. 원인모를 전쟁에 총알받이로 내몰려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적군의 치료와 도움을 받는 신세이니 분노와 원망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맹의순은 이런 포로 환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천사였다.

겨울에는 따뜻한 물로, 여름에는 시원한 물로 발을 씻겨 주면서 시편 23편을 중국어로 적어서 더듬더듬 읽어 주었다. 특히 그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자주 암송하였는데 그의 돌봄을 받았던 대부분의 중공군 포로들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주문처럼 암송했다고 한다.

본 작품은 실화 소설이다. 사실적 묘사와 구성의 창의성이 탁월한 작품이다. 전쟁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잘 다듬어서 세상에 내어 놓은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을 접하고 한 동안 그 감동을 품고 살았다. 26년의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살다 간 맹의순 선생의 삶이 주는 감동이 이 시대와 교회에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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