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서 (4)] 여러분, ‘불혹 신앙’을 아시나요?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여러분, ‘불혹 신앙’을 아시나요?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시험을 못 보거나, 숙제를 안 하면 선생님들에 매를 맞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마다 매를 많이 드시는 무서운 선생님들이 꼭 계셨고, 그런 분들은 보통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주요 과목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성실한 학생들은 매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저희 중학교에는 국어 선생님이 특별히 더 무섭고 매를 많이 드시는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무서운 국어 선생님에게 엄청 매를 맞으면서 배운 단어들이 바로 ‘약관 20세, 불혹 40세’ 이런 단어들이었습니다.
어찌나 선생님께서 매섭게 가르치셨는지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약관, 지립, 불혹 등을 달달 줄줄 외웠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 우리의 엉덩이는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맞으면서 공부를 해서 그런지 ‘불혹’의 뜻은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혹의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 같았습니다. ‘사람 나이가 40세에 이르면 세상이 어떤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 넘어가지 않는다.’ ‘~~ 않는다.’
저는 정말 중학생 때 불혹을 배우면서 사람이 40세가 되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40세가 되어도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어떻게 유혹을 잘 이기고 계십니까? 그런데 최근 진정한 불혹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심오한 불혹의 뜻이었습니다.
※ 불혹 = 40세까지 자신이 즐겨하던 일을 그만두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것이었습니다. 40세까지 도박하던 사람은 도박을 그만두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40세까지 바람피우고 살던 사람은 이것을 그만두라는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습관처럼 되어 버린 것을 그만두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혹’의 영향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에도 이런 불혹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하는 방식대로 믿고, 자신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만 듣고, 본인의 방법대로 봉사하는 ‘자기 습관화’된 신앙, 이것이 바로 불혹 신앙입니다. 성경 말씀보다 본인의 방식이 우선이고, 공동체의 의견보다 자신의 경험이 우선인 신앙! 이런 신앙을 가진 분들은 성경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에 유혹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라는 말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은 자기만족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얻는 신앙입니다. 자신의 안목에 따라서 사는 삶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자기 안목에 따라서 살았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롯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과 같이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가나안에 입성해서 자신들이 거처할 땅을 고를 때, 롯은 나중에 유황불로 멸망당한 소돔 땅을 고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롯이 소돔 땅을 고른 이유가 ‘물이 넉넉해서’라고 합니다. 즉 롯은 ‘물이 좋은’ 곳을 고른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양과 소를 키우기 가장 좋은 땅, 자신의 안목에 적절한 ‘물이 좋은’ 땅을 고른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나의 안목과 나의 경험에 의지한 ‘불혹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만으로 만족하는 신앙 아닐까요? 여전히 ‘불혹 신앙’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왜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인 줄 아십니까? 사실 가나안은 애굽 땅보다 못한 땅입니다. 애굽 땅은 물이 풍부해서 농사가 잘되지만, 가나안 땅에는 큰 강이 없고, 골짜기 많아 비만 오면 비가 땅속으로 스며드는 안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함으로 축복을 경험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의 삶이 곤고하고 어려워도 그분만 의지하는 삶을 살 때,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없는 땅이지만 하나님의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기적을 경험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경험과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그분이 주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축복으로 받고 사는 삶이 가나안에 있기 때문에 그곳이 축복의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불혹 신앙’을 버리고 그분만 의뢰하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의 땅이 가나안 땅이고,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기적을 경험하는 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