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elect Page

[무화과나무 아래서](33) 나는 비교 강박증 환자인가?

[무화과나무 아래서](33)  나는 비교 강박증 환자인가?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나는 비교 강박증 환자인가?

우리는 비교 강박증 환자다. 비교하지 않으면 속는 느낌까지 든다. 라면을 하나 사더라도, 인터넷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남과 외모를 비교하고, 연봉을 비교해서 나의 성공 수준을 평가한다. 남보다 더 가졌으면 성공했고, 남보다 부족하면 실패했다고 믿는다. 아이를 키울 때도 ‘왜 우리 아이는 부족할까? 왜 우리 아이는 느리지?’ 생각하고 잠 못 이루고, 불안해하며 때로는 화낸다. 비교해야 직성이 풀리지만, 비교당하면 분노한다. 

비교 때문에 분노했던 사람이 바로 사울이고 가인이다. 사울은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다’라는 말에, 자신이 왕이라는 것도 잊고, 질투의 화신으로 살았다. 질투의 망령으로 결국 자신과 자녀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는 불쌍한 인생이 된다. 

가인은 어떤가? 가인의 이야기는 더욱 안타깝다. 가인은 아담과 하와가 낳은 인류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추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나님이 부모를 낙원에서 추방하였다고 가인이 분노하는 장면을 성경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동생과 비교당하는 순간은 달랐다. 하나님이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사를 받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동생을 미워했다. 그는 낙원에서 쫓겨난 것보다, 비교당할 때 분노했다. 좋은 집에서 쫓겨나고 가난해진 것보다, 동생에게 비교당한 것이 더 화가 난 것이다. 추방보다 비교가 그에게는 더 힘들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3번이나 그의 마음을 살피고 당부하신다. ‘가인아 너의 분함이 어찌 됨이냐? 너의 얼굴이 변함이 어찌 됨이냐? 너는 죄를 다스릴지어다.’ 하나님은 여전히 가인을 사랑하셨다. 세 번이나 가인이 돌아서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가인은 등을 돌린다. 아벨을 죽인다. 그리고 여호와를 떠나 성을 쌓고, 새로운 질서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간다. 

가인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 같지 않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나의 아픔과 나의 상처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하나님을 탓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은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잘나가는데, 나의 소박한 기도 하나 안 들어주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야! 전능하신 당신이 가해자고, 피조물인 나는 피해자야’ 그리고 하나님은 내 인생에 없어, 나의 운명은 내가 개척할 거야, 가서 성을 쌓고, 나의 사람과 나의 문화를 만들고 성공을 일굴 거야! 철저히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의 불행이 다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의심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아니던가! 마귀는 우리가 가인과 같이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만든다. 나만의 죄악된 성을 쌓게 한다. 

더 이상 사단의 계략에 속지 말라, 비교 때문에 생기는 열등감은 비교하는 당신 마음속에만 있는 허상이다. 더 이상 이 허상에 휘둘려서, 비교의 희생물이 되지 말라. 당신은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이다. 늘 이것을 기억하자. 내가 실패로 분노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비교 강박증을 극복하라. 

만성 비교 강박증에 시달릴 만한 환경을 가진 사람은 바로 라합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녀는 여행객을 상대하는 창녀였다. 그녀의 비즈니스는 성공적이어서, 여리고 성벽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은 수치였고, 그녀의 성공은 정숙함과 비교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퇴폐 비즈니스의 상징이었다. 돈은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어쩌면 죽음보다 못한 삶이 그녀의 삶이었다. 그러나 여행객들을 통해서 여호와에 대한 이야기를 알았고 정탐꾼이 왔을 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고 고백한다.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절망만 하고 있었다면 그녀는 기적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고백한 후 기적을 경험한다. 여리고성의 모든 성벽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성벽 위에 있는 그녀의 집은 안전하였다. 무슨 소리인가?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앞에서 나팔을 불 때, 원래는 라합의 집도 성벽과 같이 무너져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모든 성벽은 무너뜨렸지만, 그녀의 집만은 보호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하였을 때 전쟁영웅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자격이 주어졌다. 창녀라는 과거가 사라졌다. 그러나 라합의 변신은 여기 멈추지 않는다. 마태복음 1장 5절을 보면, ‘라합이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다’고 되어있다. 라합의 남편인 살몬은 모세의 사돈으로 7만 5천 명 정도의 군사를 거느린 엘리트 집안의 남자였다. 민수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군대가 60만 명 정도인데, 이 중 12%를 관장하는 유력 가문의 안주인이 된 것이다. 또 라합의 혈통은 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으로 이어진다. 왕족이 된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그녀의 과거는 창녀였지만, 그녀의 오늘은 왕족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데도 과거에 얽매여서 비교만 하고 살 것인가? 큰 그림을 그리는 주님을 바라보라. 라합처럼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라.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나를 보라, 더 이상 작은 것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조각에 불과하다. 한 조각의 실망에 너무 낙심하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리시는 주님과 동행하라. 

조선소에서는 쇠로 배를 만든다. 쇳조각 하나를 물에 던지면 가라앉지만, 쇳조각으로 배를 만들면 물에 뜬다. 한 조각 한 조각은 가라앉지만 완성되면 쇠가 물에 뜨는 기적이 일어난다. 거기다가 엄청난 가치의 화물까지 실을 수 있다. 하나하나의 피드백과 결과의 일희일비하지 말자. 과거의 실수 한 번에 너무 절망하지 말자. 당신은 주님의 비전을 품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닐 비전의 방주다. 차곡차곡 완성의 길을 걸어가자. 

미주침례신문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