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수다(23) – 그리스도의 마음이 느껴지던?

김영하 목사(샬롬선교교회, 미주)
그리스도의 마음이 느껴지던?
나는 기질이 그런지 규칙적으로 행동하는 습관이 형성되었고 그런 행동이 옳은 것이라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어릴 적에 방학 때에도 늦잠을 자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불규칙적이거나 감정에 따라 행동이 급변하는 사람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나는 군인이나 엄격한 질서가 요구되는 직업이 적성에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다. 이왕 목회자로 부르셨으면 군목, 신학교 교수, 혹은 대형교회의 행정목사를 하면 잘했을 것인데 하필이면 달동네의 개척교회로 인도하셨다. 그러니 적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나의 목회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일례로 나는 예배시간에 늦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 권면해도 개선되지 않자, 예배시간이 되면 예배당 문을 잠근 적도 있었다. 그래도 늦는 교인은 필요 없으니 다른 교회에 가라고 선언한 적도 있다. 하지만 행동도 고치지 않으며 교회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생계도 어렵고 하나님이 나를 잘못 부르신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자 목회가 즐겁고 행복하기보다는 신세한탄의 참혹한 현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서 있는 곳이 벼랑 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으나 딱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목회가 무엇인지 다시 기도하던 중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었다. 사랑하려는 시도 자체가 나에게는 고역이었으며 사랑도 사치였다. 사랑조차 맘대로 되지 않으니 심장에도 무리가 왔다. 이른바 목회상사병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어느 날 깨달음이 왔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그것을 하나님도 과연 옳다고 여기실까?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그것이 과연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자 생각나는 사건이 있었다. 십자가였다. 대신 죽는 것이다.
개척한 후 거의 10년 정도를 주일 아침에 쌀을 씻으며 밥을 준비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교인들이 변화되어 따라 하기를 원했다. 미국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하며 늘 웃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교인들을 대할 때 웃으려고 노력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나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죽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상은 나는 날마다 살아나고 있었다. 목회자 연기를 한 것이지 목회자로 산 것은 아니었다. 죽음까지도 연기할 수 있는 내 자신이었다.
딸이 아들을 출산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눈에는 아직 어린아이로 보이는데 아이가 아이를 낳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가 출산했을 때는 이런 가엾은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저 아빠가 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손자를 돌보는 딸의 모습을 보며 목회한 지 30년이 넘도록 그동안 가르치는 목사로 살았지 복음으로 자녀를 낳는 아버지는 되지 않았던 내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15:4)”.
생명의 의미가 깨달아지자 이제는 매일 아침 눈물이 흘러나온다.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약간 느껴진다. 주님은 교인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기를 원하시며 오래 참으셨고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잉태되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주님의 생명을 나누지도 못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철들자 망령이라고 이제는 정리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다.
* 그동안 시론, 목회수다 등의 글로 섬긴 김영하 목사의 칼럼은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기고로 수고한 김영하 목사님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필자가 그동안 나눴던 지혜와 따뜻한 시선이 여러분께도 큰 도전과 힘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