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사모의 ‘교회 장애교육’(14)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홍경아 사모(미주)
아리조나한인교회, 현 공립초등학교 특수교사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미국 지구인들은 이것을 줄여서 ODD라고도 한다. 나는 10년 넘게 한국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했지만 이러한 단어를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런 무시무시한 이름의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들이나 사춘기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두 질겁을 하는 단어 “적대적”과 “반항”이 동시에 들어간 이 장애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 장애를 지닌 지구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ODD에 대해 공부하면서 심청전 속의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나자마자 눈이 번쩍 뜨인 것 같은 경험을 하였다. 과거에는 무지했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전에 일하던 학교에서 옆 반 선생님을 고통과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1학년짜리 꼬마 학생이 왜 그렇게 행동하였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교사 회의를 할 때마다 1학년 미영이(가명)이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다. 오늘은 미영이가 선생님에게 쌍욕을 했다. 말대꾸했다. 어제는 수업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을 했다. 그저께는 친구를 째려보며 협박을 했다 등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1학년 학생의 귀엽고 순진한 행동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무시무시한 행동이었다. 옆 반 선생님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미래의 사이코패스를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당시에는 왜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옆 반 선생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도대체 미영이의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키길래 아이가 저따위인가, 정신병원에 가서 진단검사를 받게 해야 하나 등등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몹시 우울하고 무기력한 느낌을 가졌었다.
한 번은 교사 연수에 참석했다가 한 여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그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휴직 중이었고 몇 달간 정신과 치료도 받으셨다고 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한 남학생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5학년이었던 이 남학생은 수업시간에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며 선생님이 야단을 치면 위협적으로 쌍욕을 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참을만했는데, 공부시간에 책상 위에서 공기놀이를 하면서 부시럭대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큰 소리를 내어 선생님이 수업을 도저히 이끌어 갈 수 없을 만큼 의도적으로 방해를 했다는 것이다. 이 여리디 여린 선생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 그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휴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요즘 애들은 왜 이럴까? 세상이 망하려나? 등등 아마추어적인 생각만 하였다. 그러나 ODD를 알게 된 순간 이 괴물 같았던 아이들의 행동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ODD, 다른 말로 적대적 반항장애는 한마디로 무조건 반항을 하는 성향을 지니는 것이다. DSM-5라는 미국 심리학회의 정신질환 진단통계 편람집에 실린 설명에 따르면 적대적 반항장애란 “또렷하게 반항적이고 불복종적이며 도발적인 행동을 보이지만 규칙을 어기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사회적 행동 또는 공격적 행동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ODD를 지닌 지구인의 특징은 화내기, 어른의 요구나 규칙을 무시하거나 거절하기, 어른들과 논쟁하기, 고의적으로 남을 귀찮게 하기,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남의 말에 쉽게 기분이 상하거나 신경질 내기, 화내고 원망하기, 앙심 품기이다. 놀라운 것은 ODD를 지닌 지구인들은 보통 자신들이 반항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문제의 근원은 자신이 아니라 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ODD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증상 중 네 가지 이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이러한 증상 때문에 학교, 가정, 직업 등에서 큰 지장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증상이 형제 이외의 한두 사람이나 한두 장소에서만 나타나도 ODD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동안 좀 성격이 까칠한 어린이, 악동 등으로만 생각했던 성향의 지구인들이 사실 장애의 일종 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ODD를 가진 지구인 어린이를 만나게 되면 아주 무섭게 훈육을 하거나 싸우기 지쳐서 방치를 하거나 이들과 말싸움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못된 송아지에게는 매가 약이다”라는 식으로 매를 때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 지구인들은 기가 죽기는커녕 더욱 사납고 악독하게 반항의 끝으로 치닫게 되기가 쉽다. 나중에는 매를 때리는 부모나 맞는 아이나 모두 악마가 되기도 한다. ODD를 지닌 지구인들 중 43%가 성장 후에 품행장애(conduct disorder)로 발전하며, 품행장애로 진단받은 지구인들 중 70~90%가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disorder)로 진행된다고 한다.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ODD 지구인들을 다루는 교육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옆 반 선생님과 교사 연수에서 만난 그 여선생님이 ODD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닌 지구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았더라면 그때 수고를 좀 덜 수 있었고 학생과 교사 모두가 조금 덜 불편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 내가 가르치던 교실의 5살짜리 지구인이 보조 교사 선생님에게 “F”로 시작하는 욕을 날렸다. 이유는 간식 가방을 치우고 놀라는 지시를 했기 때문이었다. 보조 선생님은 좀 놀라긴 했지만 차분하게 자기가 헛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쌍욕을 들었는지 확인 질문을 한 뒤, 침착하게 대응하였다. 5살 지구인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훈육을 하고, 지구인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5살 지구인이 OD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무능한 교사여서 5살짜리에게까지 얏보이는 것인가?”하는 쓸데없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고, 어린 지구인의 엄마와 가정교육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지구인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마저 가지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면 스트레스 받는다!” 이것이 내가 ‘적대적 반항장애’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다음 호에는 적대적 반항장애를 지닌, 5살 어린 나이에 이미 전 학교에서 정학을 2번이나 먹은 지구인이 전학 올지도 모른다고 하니, 파란만장한 나의 학교생활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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