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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37) Star vs. Bible   

[무화과나무 아래서](37)  Star vs. Bible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Star vs. Bible   

 

몇 년 전 여름 우리 가족은 휴스턴에서 운전하여 올랜도 디즈니 월드를 다녀왔다. 편도 1,000마일 거리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서 고속도로로 갔다. 가는 동안 호텔도 들리고, 커피숍도 들리고 하면서 갔다. 그러나 1,000마일 운전은 매우 힘들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2,000년 전 1,000마일 정도 여행한 사람들이 있다. 오직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왔다. 편도는 2,000마일 거리인데, 목숨을 건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동방박사들은 무엇을 믿고 이렇게 먼 거리를 무작정 왔을까? 아기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을까? 신학자들은 이 박사들이 바벨론에서 천문학을 공부하던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동방박사의 박사라는 단어의 원어가 마고스(magos)인데 이 단어가 구약 다니엘서에 나오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총리가 되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에 보면 임금이 다니엘을 마술사, 점성가와 점술가들의 우두머리로 삼았다고 말할 때 이 마술사, 점성가로 표현된 단어가 마고스다.  

쉽게 말하면 다니엘이 동방박사들의 대표가 된 것이다. 신학자들은 동방박사들이 다니엘을 통해 전달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정도의 성경과 메시아에 대해서 당연히 연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성경 중에서 메시아가 세상에 탄생할 때 별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나타났고 여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착각한다. 동방박사들이 별만 보고 왔다는 것이다. 더 쉽게는 별이 계속 동방박사를 인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특히 원어로 보면 별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절대로 내비게이션처럼 동방박사를 인도하지 않았다. 

처음 별이 나타나자, 박사들은 메시아가 태어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온다. 별은 메시아의 탄생 신호이지 인도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다음이 어려워진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다. 그래서 아기 예수의 탄생 장소를 물어봅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디 나셨습니까?’ 처음에 별이 나타난 것만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고 생각하고 왔으니, 왕궁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헤롯의 왕궁에 아기 예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디에 메시아가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도움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는 예언을 알게 된다. 그래서 베들레헴으로 방향을 정한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 동방에서 보았던 별이 다시 나타난다. 마태복음 2장 9절이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여기에 ‘보던’이란 말이 있다. ‘보던’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계속 보아왔던 것인가 아니면 과거에 보던 것인가? 과거에 보던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정말 사랑하고 원하지만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주시던 이북식 가지찜이다. 아무리 아내보고 해달라고 해도 이 여인은 먹어보지 못했으니, 흉내도 못 낸다. 그래서 가지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가지찜이 문득 생각난다. 그렇다, 이 별도 나의 가지찜처럼 과거에 보았던 거다. 한동안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별이 갑자기 지금 다시 문득 등장한 것이다. 위 성구에 나오는 ‘문득’도 원어의 뜻은 ‘생각지도 못하게’라는 말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위에서 갑자기 다시 등장한 것이다. 

별 한번 보고 말씀만 믿고 열심히 와서 다시 만난 그 별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래서 마태복음 2장 10절처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한 것이다. 별 따라 계속 왔다면 이제 와서 뭐 놀래고 기뻐할 이유가 있을까! 어제도 있고, 그제도 있는 별인데 그 별이 등장했다고 뭐가 그렇게 기쁘겠나! 그런데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베들레헴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을 인도하니 얼마나 기쁨이고 감격이었을까! 

그럼, 동방박사를 인도한 것은 무엇일까? 있다가 없어지고 하는 별인가? 아니면 별이 있기 전부터 있던 말씀인가? 동방박사를 예루살렘까지 인도한 것은 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씀이었다. 박사들은 말씀에 의지해서 베들레헴까지 온 것이다. 인생을 살아갈 때 의지해야 할 것은 말씀이다.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다. 기업의 수치, 경기를 알리는 경제 뉴스, 통장의 잔고가 아니다. 병원 검사의 조금 좋아진 수치가 아니다. 바로 말씀이다. 인생은 늘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오늘 같은 내일이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늘 동방박사들이 걸었을 법한 광야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길이 없다. 그래서 기도한다. 길을 보여달라고, 그러나 응답이 없는 것 같다. 그럼 포기해야 하나? 내 삶에 더 이상 응답이 없다고 멈추겠는가!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침묵하신다고 포기해야 할까?  

삶이 절망으로 가득 차는 그 순간 어둠을 헤매고 다닐 때 하나님마저도 침묵하시는 것과 같은 그때 앞으로 가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 그때,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이다. 올 성탄절에도 세상에 흔들리지 말고 말씀만 의지하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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