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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36)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감사다  

[무화과나무 아래서](36)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감사다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감사다  

 

자꾸 생각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듯, 나를 구원하신 그분을 생각하는 것이 감사다. 그렇다 자꾸 다시 생각하는 것이 감사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하다’의 ‘Think’와 ‘감사하다’의 ‘Thank’는 딱 봐도 비슷하다. 이 둘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Think와 Thank가 같은 어원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것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영어권에서는 감사를 표현할 때 ‘thank you’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당신이 나에게 베푼 호의를 잊지 않고 잘 기억하겠습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뭐 우리나라 말로 하면, ‘내가 당신에게 빚졌네.’ 정도 될 것이다. 그때 ‘it is nothing’이라고 답하는데, 이것은 당신이 내게 빚진 것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17세기 금융업이 발달하던 유럽에서는 도움을 주고받은 것도 금전적으로 계산해서 장부에 기록하였는데, ‘it is nothing’은 장부에 기재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지 않는가. 

하여튼 감사는 내가 타인에게 빚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당신에게 빚지고 사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의미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서로 의지하면서 남에게 빚지고 살게 된다. 내가 빚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감사가 시작된다.   

앞으로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지난 세월 고난의 때에도 아픔의 순간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신뢰하고 하루하루 세상 속에서 담대히 살아가는 것이 믿음인 것처럼, 감사 또한 지난 세월 나를 이끄신 주님께 감사하고, 오늘 하루도 기대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부족해도 채우시고, 넘어져도 일으키실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감사의 시작이다. 그때 환경이 다르게 보이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올림픽 시상식 장면을 보면, 종종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표정이 더 밝은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미국 심리학자 빅토리아 멕드백은 왜 그런지 연구했다. 은메달리스트는 ‘내가 좀 더 잘했으면, 금메달 받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고, 동메달리스트는 ‘아이고, 은메달이나 동메달이나 그게 그거지, 동메달이라도 받은 게 어디야! 잘못했으면 이것도 못 받을 뻔했지’라며 행복해한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더 못한 메달을 받았지만, 행복해하는 이런 선수들이 바보 같아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감사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지난번 기록이 더 좋았는데’ 하면서 만족하지 못한다면, 금메달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사는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메달이어도 감사할 수 있다. 가난해도 감사할 수 있다. 연약해도 감사할 수 있다. 미모가 없어도 감사할 수 있다. 감사는 선택이다. 감사를 선택하는 순간 행복해진다. 앨버트 슈바이처는 자신의 설교에서 감사는 행복을 더욱 크게 만드는 마법의 물약이라고 했다. 이제는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비록 최악의 순간이라고 여겨져도 감사해보자.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진정으로 감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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