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elect Page

Advertisement

[채형석 목사의 예배 리모델링] 운동성: 몸의 자세에 담긴 신앙

[채형석 목사의 예배 리모델링] 운동성: 몸의 자세에 담긴 신앙
채형석 목사 (러벅비전교회, TX)

예배 리모델링 2-5

운동성: 몸의 자세에 담긴 신앙

사랑하는 귀한 목회자 그리고 예배 인도자 여러분, 더운 여름철 잘 지내고 계신가요? 찜통같은 더위를 지내며, 여름철 선교/사역의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며 응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다양한 형태의 예배 현장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 나/우리의 예배를 점검해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하며 이번 글을 계속적으로 연재합니다. 이번 주제는 우리의 신체적 행위를 포함하는 “운동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다음의 질문과 함께 생각의 문을 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의 몸은 예배의 ‘방해물’입니까, 아니면 가장 정직한 ‘제물’입니까?

현대 개신교 예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적인 경건’입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 내내 의자에 붙박이처럼 앉아 머리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 애씁니다. 몸은 그저 영혼을 담은 껍데기처럼 취급받으며, 움직임은 불필요한 소란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배(Proskuneo)의 어원은 ‘무릎을 꿇다’, ‘엎드려 절하다’라는 신체적 행위를 포함합니다. 밥 로글린은 우리의 몸이 움직일 때 비로소 영혼도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강조합니다. 예배의 ‘운동성(Kinetic)’은 단순한 체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태도를 눈에 보이는 자세로 확정 짓는 ‘몸의 신학’입니다.

1. 자세가 마음을 결정한다: 역방향의 영성

흔히 우리는 마음이 뜨거워져야 손을 들거나 무릎을 꿇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마음에서 몸으로’의 방향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심리학과 영성 형성론은 그 반대의 방향도 매우 강력하다고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몸의 자세를 바꿀 때, 우리의 뇌와 영혼은 그 자세에 걸맞은 정서적 상태로 진입하게 됩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단순히 다리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의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항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손을 높이 드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는 어린아이의 의존성을 신체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중에 성도들에게 특정한 신체적 자세를 요청하는 이유는 그들의 감정을 조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체되어 있는 그들의 영혼이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더 깊이 빨려 들어가도록 돕는 ‘영적 레버’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자세의 회복: 일어섬, 꿇음, 그리고 펼침

성경 속 예배자들은 온몸으로 하나님께 반응했습니다. 밥 로글린은 우리가 예배에서 회복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자세를 제안합니다.

첫째, ‘일어섬(Standing)’입니다. 이는 왕에 대한 존경과 말씀에 대한 경외, 그리고 보냄을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만약 예배 내내 앉아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라기보다 안락의자에 앉은 비평가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무릎 꿇음(Kneeling)’입니다. 개신교 예배당에서 장의자가 도입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자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이 신체적 고백은 참회와 간구의 시간에 대체 불가능한 영적 유익을 줍니다. 

셋째, ‘손을 펼침(Open Hands)’입니다. 손을 위로 들거나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펼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겠다는 ‘빈 그릇’의 고백입니다.

3. 예배 공간의 동선과 운동성

운동성은 제자리에서의 자세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배 중 ‘이동(Movement)’은 영적인 여정을 가시화합니다. 밥 로글린은 성도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성찬대로 나아오는 행위, 혹은 기도 제목을 들고 강단 앞으로 나아와 그것을 내려놓는 행위가 갖는 힘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이동은 성도를 ‘관객석’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끌어내어 ‘결단의 현장’으로 몰아넣습니다. 수백 명의 성도가 한 방향으로 줄을 지어 성찬을 향해 걷는 모습은 그 자체로 거룩한 행진이며, ‘우리는 함께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화하게 만듭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예배 중에 정중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선’과 ‘시간’을 예배 설계에 포함해야 합니다.

4. 감각적 기억: 몸이 기억하는 예배

머리로 배운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몸으로 겪은 경험은 세포에 새겨집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간절히 무릎 꿇고 기도했던 기억, 찬양 중에 손을 높이 들었을 때 느꼈던 해방감은 평생의 신앙적 자산이 됩니다.

운동성이 살아있는 예배는 성도들에게 ‘신앙적 근육’을 만들어 줍니다. 삶의 현장에서 유혹이 찾아올 때, 예배 중에 하나님께 항복하며 무릎 꿇었던 그 신체적 기억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주일 한 시간 동안 영적인 ‘부동자세’로 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들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소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반응하도록 적극적으로 안내하십시오.

결론: 전인격적 제사를 드립시다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롬 12:1)고 권면했습니다. 이 제물은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몸’입니다.

이번 주 예배를 준비하며 성도들의 신체적 반응을 고민해 보십시오. 단순히 “일어나십시오”라는 지시를 넘어, 그 동작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마음으로 우리 함께 일어나 왕을 맞이합시다”라는 한 마디가 성도의 일어섬을 거룩한 예식으로 바꿀 것입니다. 성도들의 몸이 예배의 소중한 악기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 우리의 예배당은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묵상과 토론을 위한 질문 (Reflection & Discussion)

  1. 신체적 경직성: 우리 교회 성도들이 예배 중에 신체적으로 반응(손을 들거나 무릎을 꿇는 등)하는 것을 어색해한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통, 공간의 한계, 인도자의 안내 부족 등)
  2. 자세의 의미 부여: 현재 예배 순서 중 무의식적으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있습니까? 그 동작에 어떤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설명한다면 성도들의 몰입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3. 공간과 동선: 우리 교회의 본당 구조에서 성도들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며 참여할 수 있는 순서(예: 성찬, 봉헌, 기도 카드 제출 등)를 도입한다면 어떤 지점이 가장 적절할까요?
  4. 운동성의 절제와 조화: 과도한 신체 활동이 자칫 예배의 질서를 해치거나 감정 과잉으로 흐르지 않게 하면서도, 영동적인 운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목회자가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은 무엇일까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미주침례신문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