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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나 사모의 병아리 사모일기” (29) 곱슬머리와 사모

“김수나 사모의 병아리 사모일기” (29) 곱슬머리와 사모

김수나 사모 (루이빌 우리교회(KY))

곱슬머리와 사모

어릴때부터 비가 오는 날이 싫었다. 그날은 나의 외모 비수기였다. 아침부터 정성스레 열이 펄펄 나는 고데기를 붙잡고 온 힘을 다해 지저분한 곱슬머리를 폈는데 비가 오는 날은 그 수고가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부터 매년 두어번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거금을 주고 시간을 내어 머리를 폈다. 수험생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해외에 오래 살다보니 어느새 혼자 머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은근히 편했다. 물론 거울 속엔 부스스한 곱슬머리가 그대로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게 낯설지가 않았다. 몇 달, 몇 년이 지나면서 그 얼굴이 조금씩 그냥 나로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나한테 그런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 ‘사모‘-, 이 이름 앞에 서면 나는 늘 다리미를 든 사람 같다. “사모님답게”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표정도 눌러 펴고 말투도 눌러 펴고 심지어 지친 마음까지도 다림질하듯 반듯하게 펴야 했다. 곱슬거리는 부분, 삐죽 튀어나온 감정, 그런 건 다 감춰야 사모다운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다. 하나님은 나를 사모라는 틀에 붓고 찍어내신 게 아니었다는 걸… 나는 먼저 하나님의 자녀였고, 그다음 한 사람의 아내였고, 그저 이 공동체 안의 한 사람이었다. 사모는 내가 순종해야 할 부르심이었지, 나를 지워야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곱슬머리를 더 이상 펴지 않기로 한 날, 비 오는 날에도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처럼, 이제는 누군가의 시선 앞에서도, 그냥 내 결 그대로 살기로 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냥 나-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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