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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서울대‧카이스트 출신 부부가 일본인 교회를 섬기는 이유(2)

[특집] 서울대‧카이스트 출신 부부가 일본인 교회를 섬기는 이유(2)

10주년 예배 후 교회에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묻자 이병택 목사는 “오랫동안 안 나왔던 사람 중에 나온 사람이 있고, 계속 전도했던 사람들도 오고, (일본)선교를 위해서 한국 사람들, 한국 교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또, 그날 새로운 사람이 몇 명이 있는데,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송솔나무가 온다고 하니) 플룻에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전공자들은 틀린가 보다. 이렇게 들어보면서 자기네들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내니까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러더라. 그냥 충격만 받고 갔다.(웃음)” 

* 바로 잡습니다. 

지난 호에서 이은정 사모를 김은영 사모로, 이병택 목사와 김은영 사모는 서울대 물리교육학과 입학 동기이며, 이병택 목사는 카이스트(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것으로 학위 과정을 일부 정정합니다. 

■ 작지만 강한 교회를 위하여 

편안했던 생애 첫 퍼스트 클래스 여행은 애틀랜타(GA)에서 어스틴(TX)까지 단 2시간 20분 만에 아쉽게 끝났다. 토요일 저녁, 공항에서 만난 이병택 목사는 다음 날 큰 행사가 있으므로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치고 교회에서 급하게 오는 길이라고 했다. 바쁜 주일이 예상되므로 호텔까지 가는 길에 간단히 인터뷰하며 교회 개척의 배경을 들었다.(교회 개척 이야기는 잠시 후에) 

원래 집에 숙소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지금 집이 엉망이라 호텔을 잡았다고 했다. 좋은 호텔을 제공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별점은 4.3이라고 해서 함께 잠시 웃었다. 오래전 다른 행사에서 이병택 목사를 만났을 때 창립 10주년이라는 말을 듣고, 취재할 수도 있다고 했더니 ‘작은 교회라서’라며 머뭇하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교회는 행사 취재하러 갈 때 여러 가지 재정적인 부담(숙소는, 식사는, 사례는 … 등)을 느끼게 돼 초청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지난 호에 언급했던 것처럼 송솔나무 선교사가 직접 오겠다고 하는데도 거부하면서 영상만 보내달라고 했던 이병택 목사의 심정도 이해된다. 부흥회 같은 경우도 그렇다. 좋은 강사를 모시려면 적잖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총회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부흥회 또는 교육 강사를 파송해주는 ‘교육부 개교회 지원사역’은 귀하다. 작은 교회들이 관심을 가지면 도움이 될 것이다. 본보의 경우에 생존이나 운영도 중요하지만, 교단과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만큼 취재의 소재가 될만한 귀한 사역이 있다면 규모에 관계없이 자비량 현장 취재를 할 계획이다. 이번 어스틴일본인교회 취재가 그런 측면에서 좋은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 

■ 후배가 전무 동기가 부사장… 첨엔 ‘나는 뭐하고 있나’  

다음날 10주년 예배의 주일이 밝았다. 이날 예배는 샌디에고(sCA)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한다는 이병택 목사 부부의 장남, 달라스(TX)에 산다는 김은영 사모의 여동생 가족도 일찌감치 도착해서 도울 것이 없는지 찾았다. 예배 후 김은영 사모의 여동생과 식사하며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도 신앙인이지만 형부와 언니, 조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분들인데, 언니 옷만 봐도…. 그렇지만, 두 분을 보면 겸손해져요.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병택 목사 부부를 만나보면 순수·검소·겸손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목회자 가정이 그렇겠지만, 자신이나 자녀들을 위해서 넉넉하지 못하고 뭔가 하나를 사더라도 꼭 필요한지 생각하고 또다시 고민한다. 그런데 작은 것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이병택 목사 부부를 보면서 목회의 기쁨과 원동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날 특별찬양으로 모든 성도가 찬양에 맞춰 율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김은영 사모는 앞에서 율동을 이끌고, 이병택 목사도 단에 올라 교회 가족들과 춤을 췄는데 엉거주춤 같았지만 해맑은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카이스트의 물리학 박사 출신인 이병택 목사의 학력이 특별해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나보다”라고 묻자 “잘할 때까지 해보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은 물리를 했지만 저는 무리를 했지요(웃음)”라며 아재 개그로 겸손하게 즉답을 피했다. 학벌을 내세우려고 하지는 않으나 학위가 일본선교에 도움이 된다고는 했다.

▲다시 다른 각도에서 물었다. “그동안 물리 쪽으로 공부를 많이 했고 또 박사까지 했는데 헛공부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은 하나님께서 물리를 통해서도 도움을 많이 주고 계신가?” = 이병택 목사는 “일본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세상에 진 사람들, 약한 사람들이 온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가난하고 못 배우고 연약한 사람들이 오고, 병든 사람들이 온다고 생각하는데,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 중에서 내가 물리 공부를 하고 박사를 했다는 것을 알면 호감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 면은 또 쓰시는 거 같다.” 

▲이병택 목사에게 “검소하다는 얘기가 많은데, 경제적으로 어려웠나? 그리고 삼성전자와 학교 교사의 포기하고 가난한 일본인교회 목회자가 됐는데, 삼성전자 주가가 올라가고 새로운 반도체가 나오고… 후회하지는 않았나?”라고 물었다. = 이 목사는 “미국에 오니까 어려웠다. (직장 그만두고 선교하러) 몽골에 갔다가 신학 공부하러 (미국에) 오니까, 학비도 그렇고 생활비도 그랬다.(어려웠다.) 이제 보니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핸드폰 없는 애들이 자기들밖에 없었단다.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숙제 같은 거를 칠판에다 쓰면서 사진 찍으라고 하면 다 사진 찍고 그러는데 둘째 아이는 그걸 지우기 전에 쓰느라고 되게 힘들었다고, 그리고 학교에 픽업하러 가면은 차가 너무 후져서 너무 창피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달라스(TX)에 있을 때 후배가 전무가 되고 동기가 부사장 되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는 뭐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그런 것을 다 준비시키신 것 같다. 옛날에는 이렇게 헌신하면은 내가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랬는데,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길을 열어주시지 않으면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럴 때를 기다리셨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신학교 다닐 때 ‘나는 반드시 일본을 간다. 그리고 나는 일본선교이기 때문에 일본을 가든지 아니면은 몽골이라도 가서 일본 사람들을 섬긴다’고 했다. 몽골에도 일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같이 신학 공부했던 사람들도 다 선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어디를 갈 거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아니 정확하게 선교지도 모르면서 무슨 선교를 하겠다는 건가’라고. 그랬는데 졸업한 다음에 미국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요. 나는 반드시 선교지로 간다고 했는데, 선교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다 선교지로 떠나갔다. ‘나는 안다’고 했던 나는 못 가고 결국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텍사스 오스틴에 오게 됐는데 내가 계획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실 때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기 편하실 때 기다리시는 거 같다. ‘하나님,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 이 교회가 세워진 것도 내가 계획한 것도 아니고, 달라스(TX)에서 성경공부하던 한 자매가 ‘왜 오스틴에 일본인 교회가 없냐?’고 물어본 질문으로 시작된 것인데 그 자매한테 나중에 왜 그때 그런 얘기를 했는지 물어보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대답만 있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것 같다.” 

목회자들은 대부분 고학력자가 많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목회학석사(M.Div.)가 필수이기에 최소한 석사 학위 소유자이고, 이제는 박사학위자도 많아 고학력 평준화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오늘도 세상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음에도 주를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서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다음 호에 계속 

/ 미주=채공명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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