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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32) 욕망! 사단아 물러가라!  

[무화과나무 아래서](32)  욕망! 사단아 물러가라!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욕망! 사단아 물러가라!   

‘왜들 저러고 산대!’ 뮤지컬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한 대사이다. 남자 주인공인 스탠리가 친구 부부의 말다툼 소리에 혀를 차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스탠리도 욕망 때문에 ‘인간이기 이전에 짐승’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욕망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뮤지컬 주인공 스탠리뿐인가? 그렇지 않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뉴올리언스에 실재하는 터미널 이름인 것 같이, 이 열차를 타고 욕망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동승자다. 우리가 욕망의 열차를 타고 세상을 달린다. 

그래서 ‘그날’이라는 이성복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욕망 때문에 ‘모두 병들어 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왜? 욕망 때문에 아플 겨를도 없고, 욕망 때문에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더 얻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욕망을 채우고자 노력만 할 뿐이다. 어쩌면, 욕망이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보겠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불안해하지 않고 안정을 누리기 위해 부족함을 메우려는 모든 시도가 바로 욕망이다. 

우리는 돈을 욕망하고, 권력을 욕망하고, 명예를 욕망한다. 왜 나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니까! 그래야만, 내 안에 안정감이 생기니까? 그런데 많이 가진 자가 욕망을 멈추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내려놓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나는 보지 못했다.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더 갖기 위해서 욕망을 불태운다. 99개를 모으면 한 개를 더 채우고 싶은 것이 우리다. 남들은 2~3개 있는데, 나는 99개 있어서 만족한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개 더 채워서 100개 만들고 싶은 것이 우리고, 100개 되면 200개 가진 사람이 부러워 더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또한 우리다. 우리에게는 만족함이 없다. 늘 부족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항상 부족하고, 욕망하고, 뭔가 채워야하는 것일까? 그건 우리 가슴에 빈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채워보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다 해도 그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C. S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만이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체,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갈망은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갈급함은 오직 주님만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없어서 빈 공간이 생겼다면 하나님으로 채워야한다. 시편 42편에 우리의 갈급함이 나온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우리도 갈급하지 않은가? 그 갈급함, 하나님만이 푸실 수 있다. 그에게 소망을 둘 때만 우리 갈급함과 갈망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마음이 공허하다고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라. 가짜로 채우지 말라. 가방도, 신발도, 경력마저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라고 우리마저 가짜로 자신을 치장하고, 채우지 말자. 

진실하게 우리 갈망을 주 앞에 내려놓으라. 주님만이 해결자이심을 고백하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주 앞에 서지 말고, 헌신하지 말고, 복 많이 받으려고 헌금하지 말고,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기도하지 말고, 세상 욕심을 헌신과 섬김이라고 포장하지 말고, 온전히 주 앞에 서라. 정직하게 나의 연약함과 빈 마음을 열고, 나를 채우실 주님을 기대하라. 더 이상 나를 속이는 세상 욕망에 속지 말라. 

디모데후서 2장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내 그릇을 깨끗이 하고, 온전히 하면서 기다리라. 그때 내 그릇이 질그릇이라도 주님은 귀하게 사용하시며, 놀라운 은혜로 채우신다. 그 순간 우리 욕망이 주안에서 소망으로 거듭나고, 소망은 온전한 비전이 되는 것이다. 그릇도 깨끗하지 하지 않고, 욕망만 잔득 채워놓고, 나의 욕망을 비전이라고 포장하지 말라. 설령 주님이 주신 비전이 있더라도, 더러운 그릇 속에 있다면 결국 욕망으로 변질 될 것이다. 

무엇을 채우겠는가? 진짜로 채우겠는가? 가짜로 채우겠는가?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질그릇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채우기를 기도한다면 당신을 통해서 기적은 일어난다. 비록 종종 사탄이 나의 욕망을 자극할지라도,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치며,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사탄을 이겨내라. 

사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래전 일이다. 이동원 목사님을 모시고 장년부 수련회를 간적이 있다. 첫날 저녁 식사 후에 간단한 디저트로 양갱이 나왔다. 양갱은 이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간식이었지만, 아쉽게도 당조절 때문에 드시기를 주저하였다. 그래서 내가 “목사님 하나 정도는 괜찮습니다. 드세요”라고 몇 번 권했더니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였다. ‘비서 목사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다니, 나도 목산데…’ 양갱 해프닝 이후에도, 한 번 더 원로목사님을 유혹하는 사탄이 된 적이 있다. 그때는 아이스크림이었고, 그때도 ‘사탄아 물러가라’를 들었다. 그 후 단 음식을 권유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온전히 물러간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히브리어에는 글자마다 수의 개념이 있다고 한다. ‘사탄’을 숫자로 바꾸면 ‘364’란다. 우연처럼 1년 중 하루를 뺀 모든 순간, 364일 사탄이 활개 치고 우리 마음을 유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는 말라. 또 우연처럼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표현이 365번 나온단다. 마치 365일 일 년 내내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살라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매일 매일 마음속에 욕망이 끓어오르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바뀌기를 기도하라. 욕망이라는 열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든다면, 오히려 깨끗한 내 그릇에 선한 일을 채우실 주님을 기대하라. 그리고 끊임없이 사탄이 나의 욕망을 자극한다면, 외쳐라. ‘사탄아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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