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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65) 열매

[무화과나무 아래서](65) 열매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열매

유난히 뜨겁고 무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이고, 계절은 어느덧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가을의 길목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봄날에 흙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무더운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며 잡초를 뽑고 줄기를 가꾸는 모든 수고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이 가을에 맺힐 열매를 향해 있습니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가을이 되면 자신이 한 해 동안 무엇을 위해 존재했는지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로 증명해 보입니다.

사람의 인생과 영적 여정 역시 이 자연의 이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매일의 시간과 건강을 주시며, 거부할 수 없는 은혜와 거룩한 사명을 맡기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생의 가을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화려한 꽃을 피웠는지, 얼마나 풍성한 잎사귀를 자랑했는지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네 삶에 무슨 열매가 맺혔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기보다, 누군가가 피땀 흘려 맺어 놓은 열매를 그저 공짜로 받아먹기만 하는 ‘소비자’로 살아가곤 합니다. 다른 성도들의 피눈물 나는 기도로 세워진 교회의 그늘을 누리고, 누군가의 묵묵한 봉사와 헌신이 만들어낸 사역의 열매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기꺼이 챙기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삶에서 맺어야 할 거룩한 열매에는 무관심합니다. 계절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나 자신을 향해 가장 정직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주님 앞에서 열매를 맺는 생산자인가, 아니면 남의 열매를 슬그머니 취하는 도둑인가?’

유대 문헌과 당시 문화에 따르면, 유대인들에게 무화과나무 아래는 햇빛을 피해 조용히 엎드려 기도하고 율법 말씀을 묵상하는 영적이고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룩한 무화과나무 아래는, 기도하는 척하면서 잘 익은 무화과 열매를 슬쩍 따 먹는 ‘도둑의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경건한 척하는 자리에서 실상은 열매를 훔쳐 먹는 도둑질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더 기막힌 사실은 그렇게 몰래 훔쳐 먹은 도둑이 입을 닦으며 맛을 평한다는 점입니다. “올해 무화과는 생각보다 맛이 없네”, “크기가 작아서 볼품이 없어”라며 훈수를 둡니다. 수고하여 땀 흘린 적은 단 1분도 없으면서 평가자의 위치에 올라앉아 혀를 차는 모습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 무화과나무 아래의 도둑과 같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도 누군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골방에서 눈물로 제단을 지키며 기도하고, 누군가는 주말마다 주방과 주차장에서 온몸이 젖도록 섬기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땀방울이 만들어낸 열매를 받아먹으면서, 정작 예배가 어떠니, 설교가 어떠니, 봉사자들의 태도가 어떠니 하며 비판의 잣대만 대고 있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남이 맺은 열매나 따 먹고 품평이나 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직접 거룩한 열매를 맺으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잎사귀만 무성한 신앙에 속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분명한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8절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영적 성숙의 기준은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복과 은혜를 받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그 은혜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받아내는 것에만 기뻐하지만, 철이 든 성숙한 자녀는 내가 부모와 이웃을 위해 무엇을 나누고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도 “주시옵소서”만 외치며 받기만 하는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한량없는 은혜를 가지고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살려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받은 그 깊은 사랑으로 내 곁의 용서하기 힘든 이웃을 품어내야 하고, 하나님이 부어주신 물질과 삶의 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복되게 섬겨야 합니다. 이번 가을, 우리의 인격과 삶에는 분명한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예배의 열매’, 내 권리를 내려놓는 ‘사랑의 열매’, 낮아져 섬기는 ‘봉사의 열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눈물 흘리는 ‘전도의 열매’, 그리고 내 뜻을 꺾고 주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는 ‘순종의 열매’가 가지마다 맺혀야 합니다. 열매의 계절을 맞이하며,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 겸손히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는 더 이상 남이 맺은 은혜의 열매를 받아먹기만 하며 훈수나 두는 spiritual thief(영적 도둑)로 살지 않겠습니다. 나를 가지로 부르신 주님 안에 깊이 거하여, 내 삶으로 푸른 열매를 맺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정한 제자로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열매를 맺기 위해 묵묵히 땀 흘리는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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