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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일 목사의 세상에서 말씀 찾기] 다음인가, 다른인가?

[손경일 목사의 세상에서 말씀 찾기] 다음인가, 다른인가?

손경일 목사 – 새누리교회(미주)

다음인가, 다른인가?

교회는 자주 “다음 세대”를 말합니다. 다음 세대를 살려야 한다고,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용히 돌아보면 마음에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말하는 그 “다음”은 정말 다음입니까? 우리는 “다음”이 아닌 “다른” 세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경은 한 세대의 실패가 어떻게 ‘다른’ 세대를 낳는지 보여 줍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삿 2:10)

여기서 등장하는 세대는 단순히 시간이 흐른 뒤의 세대가 아닙니다. 방향이 달라진 세대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입니다. 그것은 앞선 세대의 신앙이 그들에게 삶으로 전달되지 않은 결과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다음 세대는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러나 믿음의 다음 세대는 자동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정작 지금 세대인 우리는 얼마나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다음을 걱정하면서 지금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삶의 선택 앞에서는 현실을 먼저 계산하지는 않습니까? 헌신을 강조하면서도 손해가 보이면 물러서지 않습니까? 순종을 가르치면서도 내 삶은 타협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과 청년들은 설교를 통해 배우기보다 어른들의 선택을 보며 가까이에서 배웁니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더 사랑하는지,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는지를 그대로 읽어냅니다.

우리가 믿음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안정과 체면과 유익을 더 붙들고 산다면, 그들은 정확히 그 신앙을 이어받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대는 믿음을 이어가는 “다음”이 아니라 형식만 남은 “다른”이 됩니다.

신명기 6장은 세대 전수의 순서를 분명히 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 6:6–7)

먼저, 내가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 다음에, 가르칩니다. 지금 세대가 말씀 앞에 서 있지 않으면서 다음 세대가 말씀 앞에 서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타협하면, 그들은 예배를 선택 사항으로 배웁니다. 우리가 기도를 미루면, 그들은 기도를 필요 없는 것으로 배웁니다. 우리가 순종을 계산하면, 그들은 믿음을 손해와 이익으로 배웁니다. 세대의 차이는 나이에 있지 않습니다. 방향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방향이면 ‘다음’이고, 하나님을 벗어난 방향이면 ‘다른’입니다. 교회의 위기는 다음 세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 세대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는 내일 준비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흘러갑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다음이 이어지고, 오늘 우리가 타협하면 다른 세대로 이어집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고 싶다면, 지금 세대가 먼저 말씀 앞에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순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다음은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순종의 문제입니다. 오늘 지금의 세대인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비로소 “다음”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세대를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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