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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63) 뺄셈의 절망을 넘어, 은혜를 더하는 ‘덧셈’으로 살자

[무화과나무 아래서](63) 뺄셈의 절망을 넘어, 은혜를 더하는 ‘덧셈’으로 살자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뺄셈의 절망을 넘어, 은혜를 더하는 ‘덧셈’으로 살자

베스트셀러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현대인들의 불행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분석하며,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뺄셈 사고(Thinking in Subtraction)’를 멀리하라고 조언한 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자신의 가공되지 않은 모습과 자신이 뇌리에 그려놓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모습의 격차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내 손에 쥐어진 것과 삶 속에서 이뤄낸 소중한 성취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아직 가지지 못한 것’, ‘내게 부족한 것’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이상향이라는 기준을 100점으로 둔 채, 모자란 점수가 생길 때마다 내 인생에서 점수를 깎아 나가는 서글픈 방식입니다.

특히 미국에 살다 보면 이 ‘뺄셈 사고’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민자 분들을 참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언어의 장벽, 즉 영어 때문에 남모를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엘리트로 살았던 분이라 할지라도 미국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언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그분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스로 설정해 놓은 목표의 기준선이 너무나 높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통역 없이 미국 사람들과 막힘없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대화하는 수준”을 합격점으로 둡니다. 물론 도전적인 목표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엄격한 기준으로 현재의 자신을 평가하면, 매일의 삶은 늘 자책과 부족함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습니다. 마트나 식당에서 원하는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어도 여전히 내 영어는 부족한 것이고, 미국인 이웃과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어도 성에 차지 않으며, TV 뉴스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해도 완전하지 않기에 낙심합니다. 완벽한 네이티브 스피커라는 거대한 기준 앞에서 현재의 나는 늘 모자라고 부끄러운 사람일 뿐입니다. 이미 내 삶에 찾아온 진보와 노력의 흔적들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뺄셈 사고’의 함정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 삶은 결코 뺄셈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전화벨이 울리는 것조차 두려워 가슴이 쿵쾅거렸는데 이제는 수화기를 들고 간단한 비즈니스는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대단한 진전입니다.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서 있던 내가, 이제는 상대방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한 성장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분명히 어제보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 안에서 이른바 믿음이 좋아 보이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우를 범하곤 합니다. 목회자로서 다른 목회자는 성장하고, 교회도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러지 하면서, 문득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는 왜 저들처럼 뜨겁지 못할까’, ‘내 믿음은 왜 이리 제자리걸음일까’라며 자책의 뺄셈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하나님께서 내 삶에 부어주시고 일구어 오신 소중한 은혜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4절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라며 비교 의식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남과 비교하여 등수 매기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낸 대단한 승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심겨진 아주 작은 겨자씨만 한 성장에 주목하시는 분이십니다.

신앙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도달하는 ‘완벽함’이 아니라, 매일 주님의 손을 잡고 걷는 ‘거룩한 전진’입니다. 구약의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편 116:12).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내게 없는 결핍을 세며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게 이미 주신 은혜를 세어보며 감사를 더해가는 사람입니다.

어제는 낙심하여 기도하지 못했지만, 오늘 단 5분이라도 무릎을 꿇고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면 그것은 위대한 성장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관계를 깨뜨렸을 상황에서, 오늘 숨을 고르고 참아냈다면 내 인격은 한 단계 발전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그저 지루한 의무이자 습관이었는데, 이제는 찬양 가사 한 구절에 마음에 감사가 생겼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부어주신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세상의 높은 기준과 율법의 잣대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인처럼 단숨에 높은 산을 뛰어넘으라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그저 오늘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넘어져도 다시 주님의 손을 잡고 뚝딱거리며 한 걸음을 내딛는 그 연약한 발걸음을 기뻐하십니다. 이제 내 삶의 계산법을 뺄셈에서 ‘덧셈’으로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1%의 부족함을 세며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차곡차곡 더해 주신 99%의 은혜를 세어 보십시오. 어제보다 오늘, 주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깊어졌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눈부신 성장입니다. 오늘도 내 삶에 찾아와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감사의 덧셈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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