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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사랑싸움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목회단상 牧會斷想] 사랑싸움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사랑싸움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할아버지다!” 차고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난 갑자기 도둑고양이처럼 몸을 움츠렸다. 얼른 자동차에서 뛰쳐나와 주위를 살피고 출입문을 향해 살금살금 걸었다. 문에 다다라 살며시 문에 귀를 대었다.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곧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난 경계심과 호기심으로 짜릿한 스릴을 느끼며 문을 빠꼼히 열었다. 침묵이 복도에 무겁게 깔려있었다.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뒤꿈치를 가볍게 들고 사뿐사뿐 리빙룸을 향해 걸었다.

갑자기 문 뒤에서 “뿌- 뿌-” 소리가 폭죽 터지듯 했다. 난 “으악” 비명을 지르곤 놀라 자빠지는 시늉을 했다. 성공한 몬스터 놀이에 일곱 살, 여덟 살 된 두 손녀가 팔짝팔짝 뛰며 까르르거렸다. 이날 이후 두 깜찍한 몬스터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내 뒤에서 “뿌- 뿌-” 소리를 내고 또 냈다. 난 그때마다 놀라 자빠지는 연극을 하고 그들은 배를 움켜잡고 행복해했다. 놀이가 거듭될수록 사랑이 우리들 사이에서 달콤하게 익었다.

폭 익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손녀들이 있던 AL을 떠나 외손자와 손녀가 있는 CA로 왔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쓰느라 골몰하고 있었다. 낯익은 “뿌-”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난 “아이고, 깜짝이야” 외치며 펄쩍 뛰고는 놀라 자빠지는 숙달된 연극을 했다. 덩달아 놀란 듯, 존재감을 느낀 듯, 미안한 듯, 사랑의 눈빛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손자에게 “몬스터인 줄 알았잖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골려 준 성취감과 염려된 마음으로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로 우리는 사랑과 재치와 심술이 뒤섞인 사랑싸움을 하며 숨바꼭질, 오목, 카드, 몬스터 놀이를 하고 또 했다. 그때마다 난 5대 4로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어정쩡한 미소가 활짝 웃는 웃음으로 변하고 잘 익은 신뢰와 사랑이 되었다. 그리고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차곡차곡 쌓였다.

식탁에 둘러앉아 온 가족이 식사하고 있었다. 귀여운 몬스터가 식탁 밑으로 기어와 내 발을 툭툭 쳤다. “몬스터가 왔나 봐!” 겁에 질린 듯 소리쳤다. 이때 점잖고 무겁게 훈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식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손자는 식탁 밑에서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기어 나오고, 나는 웅변하다 원고를 잊어버린 연사처럼 멍하니 하얀 벽을 바라보았다. 익어가던 사랑이 된서리를 맞았다. 내 머릿속은 구정물을 휘휘 저은 것 같은 답답함, 좌절감, 짓밟힌 듯한 자존심, 외로움 등이 뒤섞여 엉망진창이 되었다.

혼돈 속에서 아내와 나의 대리자가 다퉜다.

“놀이가 사랑을 익게 하는 걸 모르니 가정이 메마른 사막 같아지잖아.”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으면 사막에서 홀로 방황하는 외로운 여우처럼 되는 걸 몰라서 그래?”

“놀이와 진실을 나눌 줄 모르는, 몸에만 밴 예의범절은 허울 좋은 개살구 같은 인생이 되게 하는 걸 아직도 몰라? “

지지 않으려고 각자 자기주장을 할 때 화평케 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숨 쉬고 먹고 마시는 존재들은, 태어나 자란 환경과 성격과 가치관과 호불호가 모두 다르지. 그래서 눈만 뜨면 의심하고 으르렁대지. 물론 이성과 혈연과 이해관계로 정을 주고받으며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겠지. 하지만 이처럼 가까운 가족, 친구, 이웃들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고받으며 원수처럼 되는 것, 사실 아니야? 다름을 모르고, 소통할 줄도 몰라 오히려 가까움이 오해를 만들고 신뢰를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행복해야 할 관계가 이간되는 줄도 모르고 인생은 본래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며 우울해하고 힘겹게 사는 것 아니야?”

머리에 나던 열이 식고 차분해졌을 때 지혜자가 또 이야기했다.

“그래서 다툼으로 통증이 느껴져도 이를 악물고 인내하며 듣고, 이해하고, 자존심에 매인 것과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미안함과 감사함과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며 공감에 이르게 해야 해. 다툼이 사랑싸움으로 변할 때까지. 그리고 사랑놀이로 더욱 친밀한 관계로 만들어 풍성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지혜야. 이렇게 다툼을 사랑싸움과 사랑놀이로 만드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고.”

마음이 부드러워졌을 때 이야기꾼이 설교를 했다.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 형제였잖아. 그런데 원수가 되었어. 이기심과 욕심과 거짓 때문에. 하나님은 이 관계를 화해시키려 야곱을 얍복강가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도록 했지. 야곱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었지. 하지만 야곱은 왜 사랑해야 할 형제가 이렇게 원수가 되었는지, 인간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자신의 내면과 실체가 어떤 상태인지를 정직하게 볼 수 있게 되었어. 자존심을 바닥까지 내려놓는 힘겨운 싸움이었고, 죽을 만큼 용기를 내야 하는 힘겨운 씨름이었고,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깨닫는 처절한 하나님과의 겨룸이었어. 신비하게도 이때, 형제간의 다툼이 사랑싸움으로 변하게 된 거야. 그리고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제부터는 야곱(사기꾼)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이라 하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어.”

인구가 줄어든다고 세계가 아우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각 나라는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주택문제와 자녀 양육문제를 해결해 주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이 정책이 잘 지켜지는 유럽의 나라들도 인구 감소를 피하지 못한다.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보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진리를 이해하고 말하는 실력을 키우느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과 싸움하듯, 씨름하듯, 겨루듯 해 다툼을 사랑싸움과 사랑놀이로 만드는 교회가 보고 싶은 것은 어디 나만의 바람일까? 사랑싸움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만 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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