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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일 목사의 세상에서 말씀 찾기] 종교적 에고를 넘어 한 영혼을 향한 부흥으로

[손경일 목사의 세상에서 말씀 찾기] 종교적 에고를 넘어 한 영혼을 향한 부흥으로

손경일 목사 – 새누리교회(미주)

종교적 에고를 넘어 한 영혼을 향한 부흥으로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 때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에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발라 눈을 뜨게 하신 일이 있습니다. 성경은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맹인이 눈을 뜨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쟁이 있었더니…” 이게 왜 분쟁거리가 될 만한 일입니까? 함께 기뻐해야 할 일 아닙니까? 평생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되었는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분쟁을 했을까요?

성경은 그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분쟁이 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맹인이 눈을 뜨게 된 기적보다 자신들이 지켜온 안식일을 범한(?)일이 그들에게는 휠씬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종교적 에고’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이들에게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의 본질인 ‘회복’보다 안식일의 ‘형식’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안식일을 지키는 종교인임을 증명하려는 ‘종교적 에고’가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에고란 영적 우월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는데 너희는 모른다. 또한 도덕적 심판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것입니다. 즉 신앙을 사용하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종교적 에고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에고가 한 영혼이 눈을 뜨게 되어 찾은 세상보다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신앙은 주님의 마음 즉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으면 종교적이 됩니다. 종교적이 되면 한 영혼보다 종교를 통해 자신의 에고를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바로 주님이 한 영혼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이곳에는 3번의 비유가 나오는데,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를 통해 99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가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잃어버렸다 찾은 한 드라크마의 비유는 찾은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써서 잔치를 벌이는 그 마음을 통해 한 영혼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 자기를 버리고 떠난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마침내 돌아온 아들을 달려가 맞아주는 아버지의 마음은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합니다.

주님은 한 영혼을 위해 오셨고, 고통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 영혼을 위해 살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에고를 세워, 한 영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름을 통해 나의 에고를 든든히 세우기 원했습니다. 평생 맹인이었다가 이제 보기 시작한 그 사람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즉 그들에게는 영적인 에고가 한 영혼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랫동안 전도를 한 친구가 드디어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에 처음 왔지만 예배를 마친 후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동안의 기도 응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교회에서 나온 점심을 같이 먹는 중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데려온 친구를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먹던 음식을 잠시 테이블에 두고 일어나는 찰라, 부엌에서 일하던 한 분이 다가와 큰 소리를 쳤습니다. “네가 먹던 음식 네가 치우고 가야지 왜 치우지도 않고 그냥 가? 이게 무슨 버릇이야?”라고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놀라 설명을 해도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놀란 친구는 얼굴이 빨개져 바로 교회를 나갔고 다시는 교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 영혼보다 나의 의에 잡혀 사는 나의 종교적 에고가 한 영혼을 떠나버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사람의 마음에서 마지막으로 무너져야 될 벽은 ‘에고’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그 벽을 무너뜨려야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종교적 에고’라는 벽 속에 갇혀서 교만해지고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나의 에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이의 슬픔과 기쁨을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어떤 이익이나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있느냐로 반응합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한 영혼’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을 하나님은 중요하게 보십니다. 나의 종교적 에고가 아닌, 한 영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    -눅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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