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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61) 부목사는 스트레스, 담임 목사는 염려 근심

[무화과나무 아래서](61) 부목사는 스트레스, 담임 목사는 염려 근심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부목사는 스트레스, 담임 목사는 염려 근심

얼마 전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제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들여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여보, 요즘 당신 얼굴을 보면 참 신기해. 예전 부목사 시절엔 집안 공기까지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예민하더니, 요즘은 오히려 얼굴이 참 편안해 보여. 이제는 도사가 다 된 거야, 아니면 속이 너무 좋아진 거야?”

아내의 농담 섞인 관찰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습니다. 사실 거울 속 제 모습은 예전보다 주름도 깊어지고 흰머리도 늘었지만, 아내의 말대로 무언가 달라지긴 했습니다. 부목사 시절, 제 사역의 에너지는 ‘완벽주의’라는 엔진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보에 글자 하나만 틀려도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고, 행정 서류의 줄 간격 하나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아내는 그런 저를 보며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하더군요.

돌이켜보면 부교역자로 보낸 거의 20년은 그야말로 ‘거대한 스트레스의 집합체’였습니다. EM 사역부터 시작해 장년 목양, 홍보 디자인, 방송, 영상, 그리고 행정목사까지… 특히 3만 명이 모이는 대형 부활절 집회를 총괄했을 때는 정말이지 밥숟가락을 들 기운조차 없었습니다. ‘혹시 마이크가 안 나오면 어쩌지?’, ‘누군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분명 참석한다고 보고 받았는데 현장에 안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 결과 제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습니다. 위궤양이 생기고 지방간 수치가 치솟았습니다. 병원가면 의사 선생님이 직업이 뭐냐고 물을 정도였다. 스트레스가 쌓이자 몸이 먼저 비명을 질렀고, 사역은 곧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담임 목사가 되고 나니 그토록 저를 괴롭히던 ‘스트레스’가 거짓말처럼 힘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주보에 오타가 좀 섞여 있어도, 화면에 자막 실수가 나도, 준비한 행사가 조금 어긋나도 예전처럼 심장이 요동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 있고, 행정적인 일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정리된다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떠난 빈자리에, 이름표를 바꿔 단 아주 묵직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근심’입니다. 요즘 저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오타나 엉킨 큐시트가 아닙니다. 바로 성도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목사님, 아이가 아파요”, “직장에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정밀 검사를 받으러 한국에 나갑니다”라는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남은 듯 먹먹해집니다.

스트레스는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하면 어느 정도 분리할 수 있었지만, 한 영혼을 향한 근심은 24시간 제 심장 박동과 함께 움직입니다. 이 ‘거룩한 근심’ 앞에 서면 저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제가 아무리 밤을 새워 고민해도 성도님의 병을 대신 앓아줄 수 없고, 그들의 인생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능력도 제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곁에서 응원하고 눈물로 격려할 수는 있지만, 결국 그 아이가 통과해야 할 터널을 대신 지나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이 근심은 저를 단 하나의 길로 거세게 밀어붙였습니다. 바로 ‘절대적인 맡김’의 자리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예전에는 성도를 위로할 때 사용하는 구절이었지만 담임목회를 하고나서는 달라졌습니다. 목회자의 근심은 제가 붙들고 있으면 독이 되지만, 하나님께 고스란히 옮겨 놓으면 비로소 가장 순도 높은 ‘기도’가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해결사가 아님을 처절하게 인정하는 순간, 근심의 무거운 바위는 주님을 향한 ‘기대감’이라는 징검다리로 바뀝니다.

부목사 시절에는 일을 잘 해내려는 긴장 속에서 사역했다면, 이제는 성도를 사랑하기에 생기는 근심 속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주님이 제게 가르치시는 레슨은 단 하나입니다. “네가 짊어지지 말고, 나에게 맡겨라. 기다림 또한 믿음의 다른 이름이란다.”

오늘도 저는 아내의 말대로 조금 더 깊어진 얼굴의 주름을 만져보며, 그 골짜기마다 성도들의 이름을 채워 넣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없는 그 모든 근심을 주님 보좌 앞에 쏟아놓을 때, 비로소 저는 ‘내 일’이 아닌 ‘주님의 일’이 시작됨을 믿습니다. 내일 아침, 해결의 주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며 오늘도 평안히 눈을 감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 ‘맡김의 신비’가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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