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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근 목사의 신앙 & 삶]
부활, 그 생명의 물결이 흐르게 하라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박성근 목사의 신앙 & 삶]</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부활, 그 생명의 물결이 흐르게 하라</span>

박성근 목사 – 남가주 새누리교회(미주)

부활, 그 생명의 물결이 흐르게 하라

로버트슨 맥퀼킨이 쓴 성령의 삶이라는 책에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마을에 호수가 있었는데 물로 가축도 먹이고 농사도 지으며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호수에는 물고기도 많이 살아서 낚시터로도 유용하게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호수 바닥에 독초가 나기 시작했고 물고기들이 죽고 가축도 먹이지 못하며 농사도 짓지 못했습니다. 이러자 어떻게 하면 이 독초를 없앨 수 있을까 싶어서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약을 뿌려보기도 했지만 안됐고, 낫으로 독초를 잘라도 안 됐습니다. 뿌리가 워낙 깊고 넓게 내려져 있기 때문에 잘라도 또 나오고 또 나온 것입니다.

고민하던 사람들이 그 마을의 지혜로운 노인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독초를 제거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버드나무를 호숫가에 심으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의아한 제안이었으나 실제로 버드나무를 심었고, 그랬더니 버드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강인한지 독초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서 독초를 다 죽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지혜가 감춰져 있습니다. 독초가 뿜어내는 죽음의 독을 이기려면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을 심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전 세계를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제거하려면 이것보다 훨씬 더 강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잘 아는 것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에는 중국의 한 모퉁이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큰 물결처럼 번졌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엄청나게 밀려오는 죽음의 이슈들, 물결들을 어떻게 막아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죽음보다 더 강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치 독초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진 버드나무가 필요했던 것처럼, 더 강한 생명의 물결이 일어나야 죽음의 물결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보다 더 강한 생명의 물결은 어디에서 올 수가 있을까요? 성경 말씀에 의하면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사건이요, 부활은 사망권세를 깨뜨린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만이 이 죽음을 멈추게 할 수 있고, 사망의 물결을 멈출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죽음의 문제들을 잘 감당하기 원한다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을 통해서 참된 능력을 받아야지 우리 안에 생명이 생길 수가 있고, 우리 안에 생명이 있을 때에 이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나누는 새 생명의 물결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일으켜가는 사역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먼저 만나야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을 만날 수 있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만 우리 안에 주어진 생명을 가지고 또 다른 생명을 살려내는 생명의 물결을 일으켜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독일 경건주의의 본산이 할례대학인데, 그 학교 출신 중에 그라프 니콜라스 진젠도르프라는 분이 있습니다.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고, 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전형적인 귀족의 길을 가려했습니다. 1719년 어느 날 독일의 뒤셀돌프라는 곳에 미술품 전시장에 갔다가 도미니코 페티가 그린 ‘에케 호모’라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는 의미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만신창이로 만든 후 그 예수님을 군중들 앞에 내보내며 “이 사람을 보라”고 했지요. 가시면류관에 찔려 얼굴이 피투성이 되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을 그린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 심령 가운데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주었건만, 너 나를 위해 무엇하느냐?”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음성 앞에 삶을 결단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이때부터 이분이 보헤미안 형제단을 섬겼습니다. 각 처에서 몰려온 집 없는 떠돌이, 피난민들, 거지들이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섬기고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가르치며 시작된 운동인 그 유명한 모라비안 운동이 된 것입니다.

존 웨슬리가 회개한 운동, 윌리엄 캐리를 통해 근대 선교의 문을 열게 된 것, 미국에 일어났던 두 차례의 대각성운동이 바로 이 모라비안 형제들의 기도의 열매입니다. 한 사람이 제대로 변하면 엄청난 생명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르고 계십니다. 생명의 물결은 절대로 멈추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멈추면 사망의 물결이 온 땅을 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생명을 가슴에 안은 사람들답게 가슴속에 있는 생명을 나누고 또 나눔으로써 생명의 큰 물결이 땅끝까지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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