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봄을 만난 생명들
지준호 목사(헌츠빌교회)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할 때 식탁 위에 수저와 냅킨을 준비하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비타민을 부인에게 주고 나도 먹는 일도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저절로 되던 일이 어느 순간부터 할 수 없게 된다. 삐쳐서 …. 비타민 한 알 주는 것도 하지 못하고 비타민을 혼자만 먹는다. 이때 난 남모르는 끙끙거림의 고통을 겪는다. 가슴속으로 들리는 음성이 있어서…. 또 삐쳤어? 그렇게 속이 좁아? 비타민 하나도 못 줘? 그리고 혼자 먹어!
찔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삐침을 푸는 것이 쉽지를 않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부부간에 내숭 떨 일이 뭐 있다고…. 며칠을 좁아진 마음과 주시는 음성 간의 힘겨운 싸움에서 이기고 비타민을 다시 아내에게 건넨다. 진땀이 난다. 쑥스러운 웃음을 웃으며…. “삐치니 냅킨과 비타민 주는 것이 무척 힘들어지네…”하며. 단단한 껍질을 깨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지……
껍질을 깨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아내의 눈동자에서는 신비하게도 초롱초롱 빛이 난다. 그리고 부끄러운 내 눈동자와 아내의 눈동자 사이에 사랑의 불꽃이 튄다.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순간 영혼을 둘러싼 단단하고 두꺼운 껍질이 깨지고 속 사람들의 만남이 눈동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나에게는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있다. 때로는 겉 사람의 단단한 껍질이 나를 보호해 주는 듯하다. 체면치레를 하며,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듯이…. 그래서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나의 약점, 죄, 상처, 부끄러운 일들은 꼭꼭 숨기고, 잘하는 것은 드러내면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다음 부끄러운 부분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처럼. 그리고는 외로움과 두려움 근심 걱정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자유 없이 살아간다. 이러는 동안 자존감은 사라지고 용기는 쇠하고, 친구는 멀어지고, 하나님이 주신 창의력과 능력과 지혜는 잃어버리고, 본래 나에게 주어진 행복과 은사들은 멀리멀리 도망가 버리고….
이렇게 사는 나에게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 영혼의 교통이 있게 하시며 자유를 누리는 기쁨, 순수한 사랑의 맛, 세상을 보고 분별하는 능력, 만난 상황의 사실관계를 진리 안에서 바르게 보게 하는 실력, 정직한 영들과 진정한 친구 되는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 은혜에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감사함이 저절로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 것보다 먼저 껍질을 벗고 소통이 잘 되는 것을 원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소통된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능력과 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주님을 닮은 창의력과 생명력으로 세상을 밝게 하며 누구에게나 다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확신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삶에서 필요한 것과 사명을 생각하며 주님의 능력을 먼저 구한다. 욕심 가운데 나온 것들이 많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주어진 모든 환경은 주님이 주신 것인데 이 가운데서 단단한 껍질을 벗고 주님과 교통하며 그 안에서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것이 지혜 중의 지혜임이 새롭다. 죄 있는 인간 세상이라서 단단한 껍질로 나를 보호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껍질을 깨고 나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을 누리는 즐거움이 크다. 봄을 만난 생명들이 서로에게 뒤질세라 오묘한 색깔로 새싹과 꽃을 피우며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자신을 드러내듯이…… 갈등이 사라지고 사랑을 나누는 기쁨, 영혼이 맑아지고 가슴이 확 트이는 상쾌함과 존귀함과 생명력이 단단한 껍질을 깨는 나에게 봄을 맞이한 생명들이 누리는 환희를 누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