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화과나무 아래서](49) “시간을 이기고 승리하라”
 “시간을 이기고 승리하라”](https://i0.wp.com/bpnews.us/wp-content/uploads/2020/08/%EA%B6%81%EC%9D%B8-%EB%AA%A9%EC%82%AC%EB%8B%98-web.png?resize=1200%2C640&ssl=1)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시간을 이기고 승리하라
아이 셋 키우면 고되기도 하지만, 깨닫고 배우는 것도 참 많다. 우리 집 둘째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둘째들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첫째나 막내보다는 많이 주어지는 것 같다. 아마도 형이나, 언니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놀이공원은 8살짜리 우리 둘째에게는 기쁨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다림과 절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언니는 탈 수 있는데, 키 작은 둘째는 탈 수 없는 놀이기구이기 때문이다. 놀이기구 입구에 있는 키 재는 인형 앞에서 살짝 뒤꿈치를 들어 보지만, 돌아오는 말은 “좀 더 커야 할 것 같아, 다음에 네 차례가 올 거야”다.
한껏 기대하고, ‘나도 실력이 늘었으니 할 수 있겠지’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다음에 네 차례가 올 거야”처럼 힘 빠지게 하는 말은 없다. 그러나 포기는 하지 마라.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주님이 도우시는 한 영원한 실패도 없다. 오히려 성장의 시간을 온전히 이겨라. 상상의 동물인 봉황은 한번 날아오르려면 천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날기 시작하면 날개짓 한 번에 만 리를 날아간단다. 그런데 당신도 이런 사람이다. 봉황같이,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비상할 사람이다.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라.
심리학자들이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 빛을 완전히 차단한 물통에 쥐를 넣은 후 뚜껑을 닫았다. 빛없는 통속의 쥐들은 평균 3분 만에 헤엄치기를 포기하고 죽어 버렸다.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헤엄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겠는가! 그런데 다른 실험에서는 실낱같은 작은 빛줄기를 통속에 비치게 했다. 그러자 쥐들은 평균 36시간을 헤엄치면 살아남았다. 완벽한 어둠에서는 살려는 노력을 바로 포기했지만, 한 줄기 빛이 비칠 때 힘을 얻은 쥐들은 헤엄치면서, 720배나 더 오래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냈다. 빛줄기를 바라보는 것이 720배나 강한 생명력을 만든 것이다.
어떤 어둠 속에서도 길을 밝혀주는 빛이 당신 앞에도 있지 않는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분이 주신 비전이 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과 소망을 붙잡을 때, 기다림의 시간은 승리의 열매가 될 것이다. 릭 워렌은 ‘비전은 크고 자신은 약하더라도,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고 기도하라’고 했다. 꿈은 크고 나는 초라하더라도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도 멀고 길어 보이더라도, 비전을 붙잡고 다른 사람보다도 몇백 배 강한 믿음의 생명력으로 승리하자.
믿음의 생명력 하면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생명력 하나는 최고였다. 그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런 요셉의 싸움은 시간과의 싸움이며, 비전과의 싸움이었다. 어린 요셉에게 꿈으로 비전이 주어졌다. 그러나 펼쳐진 현실은 비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노예의 삶이었고, 죄수의 삶이었다. 꿈으로 보여준 비전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은 보여주지 않고 멋들어진 결과만 보여주었을까?
비전 달성도 중요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비전을 버리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며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시간을 통해서 총리의 능력, 인품과 믿음을 습득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걷는 길은 아픔 중에도 주님이 나를 빚어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생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온전한 동행이 없다면, 천국도 영생도 신기루 같은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 취하지 말고, 그분을 알아가고 그분과 동행하라. 그렇게 그분과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면, 결국 비전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산에 걸려 넘어지진 않는다. 우리를 휘청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작은 돌들이다. 당신의 기다림 가운데 놓여 있는 작은 돌을 주님과 함께 치우고 가라. 그럼 머지않아 산을 넘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형통함을 보고 허탈해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은 고속도로 같은 인생길을 달리고, 당신은 혼자서 고난의 터널을 걷고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견뎌라. 주님을 모르는 자들이 성공하고 잘나가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 잠언 24장에서 하나님은 세 번이나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말라’로 했다.
깜깜한 터널에서 빛줄기 하나 의지하고 걷고 있다고 절망하지 말자. 터널 길을 온전히 걸어가자. 사람들은 터널과 같은 인생길이 펼쳐질 때,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터널은 산을 뚫어서 만든다. 터널을 만들 때는 힘들지만, 터널을 통과할 때 더 빠른 길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줄기 빛에 의지해 터널을 걷고 있다면, 남보다 빠른 길을 걷고 있다고 믿어라. 만약 여러분의 터널이 밑으로, 밑으로만 내려간다고 느껴질지라도 절망하지 마라. 다이아몬드가 실제 만들어지는 곳은 땅속 130킬로미터 아래다. 깊이 묻혀있을수록 더 단단하고, 더 가치 있고, 더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거듭나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후에 요셉이 총리로 세워지는 순간을 맞이한 것처럼, 당신의 기다림이 다이아몬드 같은 영롱한 빛으로 사람들 앞에 빛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만약 새로운 한 해도 소망이 없다고 여겨진다면 그리고 여전히 망가져야 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면 이것을 믿고 기다려라. 주님이 크고 놀라운 일을 보이실 것이라는 사실이다.